해외 팬덤 눈치 보는 K-팝 아이돌 그룹, 그럼에도 해외 진출 강행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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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커피 마셨다고 악플 테러당하는 아이돌
사소한 것에도 질책,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다”
“해외 무대는 이제 필수”, 해외 진출 위해 철저한 전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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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쏘스뮤직, 허윤진 인스타그램 캡쳐

‘K-컬처’의 선봉에 서 있는 아이돌 그룹들이 ‘해외 팬 눈치 보기’에 바쁘다. 팬층이 다양해짐에 따라 아티스트의 사소한 행동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비난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K-팝과 K-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가 불러온 부작용이다. 관계자들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을 정도로 눈치를 봐야 한다. 신경 써야 할 것만 수백 개”라고 전했다.

사소한 행동, 취향까지 간섭하는 해외 팬덤

최근 아이돌 그룹 르세라핌 허윤진은 일부 해외 팬들에게 ‘친(親)이스라엘’ 의혹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6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허윤진이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분류돼 아랍권을 중심으로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스타벅스의 제품을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스타벅스는 이스라엘에 전쟁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과 함께 공개 계정에 팔레스타인 지지 의사를 비친 스타벅스 노조를 상표권침해로 고소하면서 친 이스라엘 기업으로 낙인찍힌 바 있다.

허윤진뿐만 아니라 그룹 엔하이픈의 멤버 제이크, 블랙핑크 지수, 레드벨벳 슬기, 세븐틴 호시, 에스파 윈터, 가수 전소미도 같은 이유로 해외 팬들의 악성 댓글의 공격을 받고 있다. 이들의 SNS에는 “정말 많이 실망했다”, “공부 좀 해라”, “스타벅스를 마시다니 사과해라”, “스타벅스로부터 대가를 받은 거 아니냐”, “스타벅스를 홍보해 주는 게 문제다”, “피 맛 나는 커피는 어떠냐” 등 해외 팬들의 항의로 도배됐다.

스타벅스 사태 외에도 K-팝 업계는 지난 몇 년 사이 해외 팬들의 커진 목소리를 체감하는 중이다. 일례로 지난 1월에는 중화권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엔하이픈이 마카오 공연에서 설맞이 한복을 입었다가 중국 네티즌의 악플에 시달렸다. 최근 에스파 카리나는 배우 이재욱과 열애를 인정한 후 반성문을 써야 했다. 교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카리나의 소속사인 서울 SM 사옥 인근에 ‘직접 사과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락한 앨범량과 텅 빈 콘서트 좌석을 보게 될 것’이라는 문구가 적힌 시위 트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해당 트럭은 카리나의 열애 소식에 분노한 중국 팬이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논란들은 최근 K-팝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문제는 일부 억지스러운 비난들이다. 이에 대해 엔터 관계자들은 “해외 팬덤의 다양한 시각과 가치관, 이슈를 고려하는 건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이지만 자체 콘텐츠나 SNS 라이브 등 노출 환경이 다양해짐에 따라 팬들도 더 예민해졌다. 나라별로 사건 사고나 이슈들을 미리 확인하고 예방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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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 앙코르 투어 ‘팔로우 어게인’ / 사진=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글로벌 팬덤 잡아라”, 개명까지 강행하는 아이돌 그룹

K-팝 아이돌 그룹은 해외 팬덤에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팬덤이 없는 아이돌 그룹은 생존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은 국내 시장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 K-팝 아티스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한 대형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K-팝과 팬덤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지갑을 여는 코어 팬덤은 VVIP 고객들이라 이들의 정서, 문화, 감수성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일부 아이돌 그룹들은 팀명을 개명하면서까지 해외 팬덤을 의식하고 있다. 지난 2019년 팀명 ‘동키즈’로 데뷔했던 5인조 보이그룹은 해외 팬들이 팀명을 발음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DKZ’로 이름을 바꾸고 새출발했다. 또한 같은 해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투 비 월드클래스>를 통해 결성된 티오오(TOO)도 TO1(티오원)으로 팀명을 바꿨다. 티오오는 ‘텐 오리엔티드 오케스트라'(Ten Oriented Orchestra)의 약자로 ’10가지의 동양의 가치관을 지향하는 오케스트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서양권의 팬덤을 인식한 듯 ‘우리는 하나로 존재한다’는 뜻의 ‘투게더 애즈 원'(TOgether as ONE)’의 약자인 티오원으로 팀명을 교체했다.

차후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을 염두에 두고 개명한 그룹도 있다. 카카오TV·MBN <디 오리진 – A, B 오어 왓? (THE ORIGIN – A, B, Or What?)>을 통해 선발됐던 이들은 당초 그룹명 ‘ABO’로 데뷔를 앞두고 있었지만, ABO라는 단어가 해외에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글로벌 팬들의 의견을 반영해 정식 팀명을 ATBO로 결정했다. ABO는 일부 해외 지역에서 ‘Aborigine’의 약자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가리키는 심한 비어로 쓰이기도 한다.

일부 K-팝 아이돌 그룹은 국내 팬덤보다 글로벌 팬덤을 더 고려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월드 투어로 국내 활동에서 1년 이상의 공백기를 갖고, 데뷔 후 이렇다 할 국내 활동은 하지 않은 채 월드 투어 길에 오르는 식이다. 일례로 그룹 세븐틴은 오는 30일부터 시작되는 월드 투어 ‘팔로우’의 앙코르 ‘팔로우 어게인’에서 일본 공연 일정을 4회로 잡은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2회만 진행한다. 또한 세븐틴의 데뷔 일인 5월 30일 공연은 일본에서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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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 일본어 버전 앨범 ‘웨이브(WAVE)’ /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해외 진출 위해 철저한 ‘전략’ 세운다

해외 팬덤을 잡기 위한 노력은 음원 가사에서도 나타났다. 최근 K-팝의 선두에 서있는 4세대 걸그룹은 음원을 발매할 때 해외 팬들을 인식한 듯 영어 가사의 비중을 높였다. 서클차트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디지털 차트 TOP 400에 오른 걸그룹 음원 가사 가운데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8년 동시기 대비 18.9% 증가한 41.3%다.

영어 비중이 가장 높은 걸그룹은 (여자)아이들(53.6%)이며, 르세라핌(50.6%), 블랙핑크(50%), 엔믹스(49.3%), 뉴진스(48.4%) 등이 뒤를 이었다. 글로벌에서 K-팝의 인기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따라 영어 가사의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김 연구원은 “블랙핑크가 전 세계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킨 이후 걸그룹 시장이 해외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외 소비층이 많은 그룹일수록 영어의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앨범 자체를 외국어 버전으로 발매하는 경우도 있다. 그룹 아이브는 지난해 4월 선보인 첫 정규 앨범 ‘아이 해브 아이브’를 비롯해 디지털 싱글 ‘러브다이브’ 등을 일본어 버전의 앨범으로 따로 발매했다. 또한 그룹 르세라핌은 데뷔와 동시에 일본어 버전 앨범을 함께 냈고, 그룹 트와이스는 영어 싱글 앨범 ‘문라이트 선라이즈’를 발매했다.

이처럼 K-팝 아이돌 그룹의 해외 진출은 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전략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일부 아이돌 그룹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고도화된 전략을 구축해 해외 진출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최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는 북미 통합 법인 출범 소식을 알렸다. 해외 시장 확대를 위해 해외에서 자체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SM의 글로벌 IP와 제작 역량을 기반으로 북미는 물론 유럽 등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향후 걸그룹뿐만 아니라 K-팝 업계 전반에서 해외 진출에 대한 전략은 더욱 고도화될 전망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해외로의 사업 확장이 경영 악화의 원인이 되기도 하던 과거와는 달리 K-팝의 해외 영향력이 입증되고 있다”며 “당장의 성과를 넘어 중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더욱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사업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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