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 빛 발한 연기와 빛바랜 스토리의 부조화, ‘로기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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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기완’
송중기 비롯 배우진들의 꽉 찬 열연
'로맨스로 장르 이탈'에는 혹평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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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보고 싶은 장면은 보여 줬지만, 듣고 싶은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았다.

송중기의 열연을 앞세운 <로기완>이 배우들의 활약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아쉬운 전개로 혹평에 직면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로기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송중기 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최성은 분)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했지만, 방송작가 ‘김’의 시선으로 기완의 발자취를 되짚으며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원작과 달리 오로지 기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영화는 고향인 북한에 있을 때 친구의 싸움에 끼어든 죄로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도망친 기완과 그의 어머니 옥희(김성령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기완은 탈북자를 수색하는 공안의 감시를 피해 집 안에서 숨어 지내고,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해 그런 아들을 보필한다. 매일 좁은 방 안에서만 어머니를 기다리던 기완은 함박눈이 내리는 날 모처럼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 나선다. 하필 그날은 공안의 강도 높은 수색이 펼쳐지던 날이었고, 그렇게 두 모자는 눈 내리는 길을 달려 도망친다.

앞서 뛰는 기완을 따라 힘겹게 달리던 어머니는 골목에서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치이고 만다. 트럭에 깔린 채 힘겨운 숨을 내쉰 어머니가 기완에게 남긴 마지막 막은 “네 이름을 갖고 사람답게 살라”는 단 한 마디다. 기완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삼촌 은철(서현우 분)이 챙겨준 돈을 들고 벨기에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어머니의 당부에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벨기에에 도착한 기완이지만,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북한 사람임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 불행 중 다행으로 잡은 2차 인터뷰까지 그는 혼자 힘으로 낯선 땅에서 버텨야 했다. 중국을 떠나기 전 삼촌이 기완에게 챙겨준 돈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한 돈이었다. 그에게 그 돈은 어머니와도 같았기 때문에 이를 허투루 쓸 수 없었던 기완은 호스텔에서 공중화장실로, 공중화장실에서 다시 길거리로 나앉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낯선 이방인을 향한 폭력에 무참히 쓰러진 어느 날, 기완은 무인 빨래방에서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같은 빨래방을 찾은 벨기에 국적의 한국 여성 마리에게 지갑을 도둑맞는다.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은 남자 기완, 그리고 삶의 이유를 잃은 채 방황하는 여자 마리. 악연으로 얽힌 이들은 어느새 상대방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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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고향도 가족도 잃은 탈북민 기완의 처절한 생존기는 단숨에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로기완>은 지난 1일 공개와 동시에 [오늘의 OTT 통합 랭킹] 1위로 직행했고, 8일 차인 오늘까지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열기는 전 세계로 번져 5일(현지 시각) 넷플릭스가 발표한 글로벌TOP10 영화(비영어) 부문 3위에 작품을 올려놨다. 매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동안의 성적으로 집계하는 해당 차트에서 <로기완>은 다른 작품들보다 나흘 늦게 출발했음에도 단숨에 상위권에 안착, 글로벌 흥행에 시동을 걸었다.

송중기는 무려 12년 전 작품인 영화 <늑대소년> 속 철수를 뛰어넘은 소년미로 기완의 외로운 싸움에 보는 이들이 기꺼이 동행하게 만들었다. 원작 소설이 묘사한 ‘키 159㎝, 벨기에인들이 보기에 어린이로 착각할 만큼 왜소한 몸집’까지는 아니지만, 송중기 특유의 처연함이 극 중 기완의 초라한 행색과 더해지며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기완의 시선을 따라 벨기에 브뤼셀의 잘 정돈된 거리를 걷는 시청자들이 마주하는 것은 이방인을 향한 멸시와 폭력, 무성의한 관료주의 같은 쓰디쓴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완은 그 땅에 정당히 발 디딜 권리를 위해 계속 문을 두드린다. 중국을 떠나올 때 브로커가 건넨 가짜 조선족 신분도, 말이 통하는 동료와 일자리도 있지만 그는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한 싸움을 이어나간다. 그가 그토록 힘겨운 투쟁을 이어나가게 만드는 단 하나의 힘은 “네 이름을 갖고 사람답게 살라”는 어머니의 당부다. 영화의 제목이 <로기완>인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화는 일부 플래시백을 제외하면 시간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그렇게 여러 불행과 다행, 우연이 겹치면서 기완의 난민 인정도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불행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던 시청자들에게도 기적 같은 순간이다. 하지만 중반부에 다다른 영화는 급하게 장르를 갈아탄다. 기완의 목표가 난민 지위를 얻는 것에서 마리를 구원하는 것으로 옮겨 가면서다. 온갖 고난을 함께 견디며 기완의 감정선을 따라가던 시청자들은 이 지점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물론 기완이 ‘삶의 의미’를 위해 사랑을 찾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청자는 드물다. 문제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제외하면 어떠한 공감대도 없는 두 사람의 급작스러운 로맨스는 보는 이들에게 괴리감만 안겼다는 점이다. 특히 내기 사격이나 갱단들의 충돌, 약물 복용 같은 물리적 폭력 끝에 피어난 사랑에 공감하는 사람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 “이방인의 비극적 삶에 집중하다가 급발진하는 로맨스에 중도하차”를 선언하는 시청자들의 불만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엔 로맨스로 귀결되는 ‘기승전로맨스’는 이제 더 이상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훨씬 풍성하게 꾸밀 수 있었던 조연들의 활용 방식 또한 아쉬움을 남기는 요소다. ‘죽음과 부재’로 기완의 남은 삶에 방향이 돼 주는 엄마 옥희의 이른 퇴장은 어쩔 수 없지만,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조카 기완을 챙기며 누나를 잃은 슬픔을 삼킨 은철, 기완의 벨기에 정착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선주(이상희 분), 한인 변호사 상혁(강길우 분) 등 작품의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그려낼 인물들이 많음에도 이들의 활약상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다 맥없이 퇴장한 씨릴(와엘 세르숩 분)까지 그저 급조된 로맨스의 들러리로 소비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록 묵직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그 무게를 잃는 것은 사실이지만, <로기완>은 그 안에서도 한 사람의 정체성과 이민자로서의 투쟁, 상실과 구원 등을 그려내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이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해내는 배우들의 열연이 있어 가능했다. 멸시와 배신, 그리움과 먹먹함 같은 것들이 그들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굳게 뿌리내린 기완과 마리, 그리고 수많은 이방인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로기완>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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