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고물가’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OTT 업체 옥죄는 ‘편법 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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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국적은 한국, 디지털 국적은 필리핀? 구독 편법 성행
결합 할인 대행업체에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까지, '도덕 결핍 심화'
근본 원인은 OTT의 구독료 인상?, "윤리 문제 외면해선 안 돼"

최근 글로벌 OTT를 싸게 이용하기 위해 국적을 대한민국이 아닌 제3국으로 둔갑하는 꼼수가 성행하고 있다. 넷플릭스, 티빙 등 OTT 업체가 줄줄이 구독료를 인상하고 나서면서 구독료 부담이 커지자 구독료를 조금이나마 아끼겠단 이들이 늘어난 탓이다. 특히 포털 사이트 등에서 이들을 상대로 수수료를 받고 외국 계정을 대여해 주는 대행업체까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OTT 업계에도 위기감이 돋아났다.

스트림플레이션 속 자라나는 ‘편법’들

현재 우리 사회는 ‘디지털 고물가’ 시대에 진입했다. 국내외 OTT 요금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고물가의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스마트폰, IPTV 등 다른 디지털 서비스에까지 도미노 요금 인상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근 OTT 이용자들 사이에선 OTT 구독료를 조금이나마 아끼기 위해 국적을 변경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VPN(가상사설망)을 이용해 해외 계정인 것처럼 OTT를 가입하는 식이다. 포털에 ‘OTT 국적 변경’이라고 검색하면 다른 나라 계정을 편법으로 이용할 수 있게 안내하는 대행업체가 우후죽순 뜨기도 한다.

이 같은 편법이 가능한 건,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OTT 결합 할인을 대행업체들이 다른 나라 계정을 이용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개별 이용자가 구독료나 소프트웨어 구매비를 줄이기 위해 국적을 변경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OTT가 보편화하면서 편법 계정 사업이 하나의 시장으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됐다. 실제 네이버 쇼핑에 따르면 ‘유튜브 프리미엄’은 지난 10월 10~30대 남성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거나 조회한 상품 1위를 기록했다. 10대와 20대 여성 사이에선 각각 3위와 2위를 차지했다. 유튜브 프리미엄 정식 상품을 결제하려면 유튜브를 통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포털 사이트를 통해 유튜브 프리미엄을 검색했다는 건 결국 우회 경로를 통해 구독 상품을 찾으려는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튜브 프리미엄은 월 1만450원~1만4,000원을 내고 △광고 없애기 △영상 다운로드 △유튜브 뮤직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유료 서비스다. 외국엔 식구끼리 ID 공유를 허용하는 가족 결합 상품이 있지만, 우리나라엔 출시되지 않아 정상적인 경로로는 결합 할인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대행업체들은 VPN으로 우회 접속 계정을 만든 뒤 국내 이용자들을 ‘가짜 외국인 가족’으로 묶는다. 여럿이 함께 지불하니 구독료는 네다섯 명이 한 가족인 경우 한 달에 2,500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물론 이 같은 결합은 약관 위반이다. 유튜브와 글로벌 OTT들은 국적 변경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공식 경로가 아닌 방법으로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면 계정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국내 이용자들 사이에서 인도나 아르헨티나 등을 통한 우회 접속이 성행하자 계정 접속이 막힌 사례도 있었다.

OTT 서비스 가격, 1년 새 평균 ‘25%’ 증가

이 같은 편법은 이용자들의 윤리 의식 부족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지만, 일각에선 가격을 지나치게 인상하는 글로벌 OTT의 요금 정책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최근 들어 글로벌 OTT의 요금 인상은 무척이나 공격적이다. 아마존은 내년부터 광고형 요금제를 운영하면서 기존 광고 없는 요금제(월 14.99달러)를 2.99달러 인상할 방침이다. 지금처럼 광고를 보고 싶지 않다면 2.99달러를 더 내라는 셈이다. 디즈니는 지난 10월부터 기본 요금제를 월 10.99달러에서 13.99달러로 올렸고, 넷플릭스도 미국 등 일부 지역에서 기본 요금제(월 10.99달러)의 신규 가입을 제한함으로써 광고 없는 요금제의 최저가를 월 15.49달러로 인상했다. 맥스는 지난 7월 14.99달러에서 15.99달러로, 피콕은 9.99달러에서 11.99달러로 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년 새 주요 OTT 서비스 가격은 평균 25%나 폭등했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국가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을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요금이 과하게 비싸다”며 “OTT도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는 것보다 많은 이용자들이 이용하게 만들어 플랫폼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전략적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결국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OTT 구독료 인상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는 방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듭된 적자로 사지에 몰린 토종 OTT들조차 눈치를 보고 있다. 요금을 올렸다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리거나 가입자 이탈이 가시화되는 등 후폭풍이 발생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티빙과 웨이브, 왓챠는 지난해 각각 1,192억원, 1,217억원, 555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지만, 이들 업체는 모두 월 7,900원짜리 요금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티빙은 요금제 인상을 타진하며 수익성 개선을 노리고 있으나, 여타 토종 OTT들은 요금 인상의 ‘인’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더우반/사진=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인스타그램 캡처

OTT 업체의 ‘이중고’, 끝나지 않은 ‘불법 사이트’와의 전쟁

OTT의 고역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콘텐츠에 대해선 중국의 불법 시청이 큰 문제 중 하나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중국의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인 더우반에서 우리나라 인기 콘텐츠인 넷플릭스 <이두나!>, JTBC <힘쎈 여자 강남순> 등을 몰래 시청하고 있다”며 “국내 콘텐츠의 불법 유통은 이제 일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는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도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가 2021년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장장 2년간 운영된 바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 대책’ 민당정 협의회에서 “누누티비는 월평균 1,000만 명이 접속해 피해액이 5조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누누티비의 이용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누누티비 자체는 사이트 URL을 매일 1회씩 차단하는 등 고강도의 정부 압박과 트래픽 비용 부담으로 지난 4월 자진 폐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사 사이트가 우후죽순 등장하며 정부 제재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현재는 제2의 누누티비라 불리는 ‘후후티비’, ‘짭플릭스’ 등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부는 이들 사이트에 대해서도 단속을 시작했으나 별다른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박완주 무소속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심위는 유사 사이트에 총 17번의 제재를 가했으나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들은 URL을 변경해 가며 활동을 계속했다. 방심위의 조사에 의하면 이들 사이트의 누적 접속자 수는 1,900만 명에 달한다.

이에 한 국내 OTT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는데, 도움은 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위법 행위자를 모두 검거해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문제는 일선 경찰서에서 이를 담당해 수사하고 검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대부분 해외에 계정을 두고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공조 수사’도 필요한 사안이 대부분인데,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문제 인식은 있지만 이를 바로잡을 방안이 마땅치 않아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OTT 업체들은 각종 대행업체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일부 불법 콘텐츠 이용자들은 “값이 너무 올라 부담이 커져 어쩔 수 없었다”며 OTT 콘텐츠 불법 이용에 이유를 늘어놓기도 하나, 콘텐츠 불법 이용이 결과적으로 OTT 업체의 수익 개선 압박에 부담을 준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OTT 업체의 요금 체계를 개선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용자들의 도덕적 결핍도 함께 해소해야 할 문제임을 분명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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