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콘텐츠’ 시대, 리테일 산업도 콘텐츠 결합한 ‘경험형 매장’에 집중한다

눈앞 이익 좇던 기업들, 이제 대세는 ‘콘텐츠 융합’ ‘소비자 우선’ 전략 내세운 쿠팡, ‘이마롯’도 따라간다 온라인 소비문화 확산, ‘콘텐츠 경험형’ 오프라인 매장 중요도↑

OTTRanking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한 롯데하이마트 압구정점의 1층 와인숍 전경/사진=롯데하이마트

900조원대 유통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유통 3사 ‘이마롯쿠(이마트, 신세계, 롯데, 쿠팡)’의 대결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당초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좇던 기업들이 이제 소비자 중심의 콘텐츠 형성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상품 판매라는 전통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기업 잠재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결과다.

쿠팡에 밀린 기업들, ‘소비자 경험’에 눈길

최근 쿠팡이 로켓배송과 무료 반품, 최저가 등을 앞세워 소비자 경험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통 업계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이에 실적 하락세가 가시화된 롯데와 신세계는 ‘소비자 체험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하고 쇄신형 조기 인사 카드로 위기 극복에 나섰다. 특히 신세계는 계열사 대표 40%를 교체하는 등 쇄신을 단행했다. ‘정용진의 남자’로 불린 외부 컨설턴트 출신 강희석 이마트 대표가 임기 2년 반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백화점 대표도 교체됐다. 이번 인사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등 오너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의 파격 인사에 롯데도 매년 12월 해오던 정기인사를 앞당겨 큰 폭의 쇄신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롯데는 CEO IR 행사를 열고 2026년 매출 17조원과 영업이익 1조원 달성 목표를 제시하고 나섰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의 2.5배 수준을 4년 만에 이루겠단 복안이다. 핵심 전략은 소비자 경험을 개선하는 ‘체험형 점포’의 확대다. 이와 관련해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은 “고객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든 최고의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며 몰입하고 체험하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롯데하이마트 압구정점은 지난 2021년 가전양판점 최초로 와인숍을 연 바 있다. 99㎡(약 30평) 규모에 가성비 와인부터 330만원에 달하는 샤또마고 82빈티지 등 고가 와인까지 570여 가지 와인을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민 건데, 앞으로 이 같은 체험형 매장을 확대하겠다는 게 롯데의 구상이다.

업계에선 신세계와 롯데의 경영 전략이 ‘소비자 경험 혁신’으로 압축되면서 쿠팡식 성공 DNA인 ‘소비자 우선’ 전략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은 경쟁사보다 빠른 2014년 로켓배송 론칭을 이룬 뒤 전국 30개 지역에 100개 물류망을 건립했고, 결과 새벽·익일배송 범위를 확대해 소비자 발걸음을 온라인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쿠팡의 유료 멤버십 충성 고객과 활성고객(분기에 제품을 한번이라도 산 고객)의 폭발적인 성장세로 이어졌고, 이후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 OTT 서비스 ‘쿠팡플레이’ 등 멤버십 서비스 확장을 통해 고객을 완벽히 끌어들였다.

반면 롯데는 개별 계열사 단위 멤버십은 존재하지만 쿠팡이나 신세계 같은 서비스 통합 멤버십을 론칭하지는 못했다. 신세계는 지난 2분기 ‘신세계 유니버스’ 멤버십을 론칭했지만 아직 회원 수가 약 400만 명에 불과하다. 소비자 경험을 확대하지 못한 영향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이마트는 상반기 영업손실 39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고,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14.6% 늘었지만 매출은 6.3% 감소했다.

더현대서울 내부 전경/사진=현대백화점

콘텐츠 연결고리 강화 나선 기업들

국내 리테일 산업이 콘텐츠와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콘텐츠와 경험을 한 데 묶어 판매하는 게 커머스의 본질임을 막연하게 인지한 것이다. 실제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지난 2021년 2월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 ‘젠틀몬스터 하우스 도산’을 선보인 바 있다. 젠틀몬스터는 신기한 조형물을 다수 전시함으로써 안경 구매 외 색다른 체험을 소비자들에 선사했다. 당초 업계 사이에선 젠틀몬스터의 이 같은 전략이 소비자 구매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의구심이 많았으나, 젠틀몬스터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구주(기존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를 통한 투자 유치 과정에서 1조2,000억원의 가치를 평가받으며 국내 열두 번째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제품 체험형 매장’을 넘어서는 ‘공간 경험형 매장’의 성공이 가시화된 모양새다.

체험형 매장이 말 그대로 고객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겪어보고 구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오프라인 매장 형태를 가리킨다면, 경험형 매장은 고객이 특정 공간 안에서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매장 형태다. 체험은 순간적이지만 경험은 정서로 이어져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경험형 매장을 통한 기억은 단순한 제품 구매를 넘어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도 경험형 매장을 적극 활용했다. 더현대서울은 ‘리테일 테라피’라는 콘셉트를 내걸고 있다. 아예 대놓고 쇼핑이 아닌 힐링을 하러 오라고 광고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백화점은 평당 매출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용 공간에 많은 면적을 할애하기 어렵지만, 더현대서울은 오히려 전체 영업 면적의 절반을 휴식 공간으로 할애했다. 이렇게 매장 영업 면적의 상당수를 휴식 공간에 할애했음에도 더현대서울은 가오픈 첫날부터 매출 목표치를 30% 초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이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 결과물이다.

기초 바탕된 콘텐츠, “콘텐츠 없으면 자연 도태될 것”

이제 콘텐츠는 소비자 대상 산업의 기초 바탕이 됐다. 콘텐츠를 구성하지 못하는 기업은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랜드가 NC백화점 사업 오프라인 경쟁력을 강화하고 나선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랜드는 지난해 차세대 도심형 라이프스타일 아울렛을 선보이며 오프라인 백화점 사업을 확장한 바 있다. 신규 점포의 특징은 체험형 콘텐츠를 기존 도심형 아울렛 대비 30% 이상 늘린 점이다. 이랜드는 △키즈카페 △복합문화공간 ‘휘게문고’ △아트키즈팩토리 등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교육 및 체험형 콘텐츠를 약 4000㎡(약 1,210평)가량 입점시켰다. 체험형 콘텐츠의 중요성이 기업들 사이에 각인됐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물건을 판다는 전통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현 경제 체계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업들이 수익을 창출하던 백화점 시스템을 고객 경험의 공간으로 과감히 탈바꿈하고 나선 이유다. 즉각적으로 보이는 매출에 신경 쓰기보다 ‘고객 경험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창출’을 통해 기업 잠재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상품 구매는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온라인 구매가 더 저렴한 경우도 많다.

온라인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소비문화 속에서 오프라인 공간만의 차별성을 내세우기 위해 기업들이 선택한 건 바로 ‘콘텐츠’다. 기업들은 다양한 체험 콘텐츠 도입을 통해 고객들이 직접 와서 보고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체류시간 확대 및 집객을 위해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마케팅 전문가는 “MZ세대는 상당히 실용적이어서 소장 가치가 있는지,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인지를 판단해 지갑을 연다”면서 “MZ세대가 이제 사회 주요 계층으로 자리 잡은 만큼, 체험형 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