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자체등급분류 도입 후 ‘청불’ 등급 대폭 감소, 업계 ‘자정 노력’ 어디로?

사실상 불가능한 전수 모니터링 김승수 의원 “체계적 관리 방안 강구해야” 이미 예견된 문제, 자정 노력 요구되는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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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각 사

OTT 자체등급분류 도입 이후 OTT 방영 프로그램 중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부터 7개 OTT 기업은 시청 등급을 스스로 매길 수 있게 됐다. 유망 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지원하겠다는 취지였는데,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사후 검증을 해보니 등급이 잘못된 경우가 부지기수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노골적인 매춘, 성희롱, 폭력 등장해도 15세 관람가?

영등위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청소년관람불가 콘텐츠가 2022년 35.8%, 2023년 1월부터 5월까지 32.7%였으나, 2023년 6월 이후 18%로 급감했다. 반면 전체관람가 등급은 2022년 13.6%, 2023년 1~5월 13%였으나, 2023년 6월 이후에는 34.9%로 급증했다. 영등위에서는 OTT 자체등급분류 대상 영상물 1,926건에 대한 적절성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141건에 대해 부적절 판정을 하고 19건에 대해서는 OTT에 등급조정 상향 권고를 내렸다.

대표적인 예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한 일본 액션 영화는 자체 등급분류를 통해 15세 이상 관람가로 설정돼 지난달부터 상영 중이다. 하지만 영등위의 시청 등급 판단은 달랐다. 영등위는 청소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청소년관람불가로 등급 상향 조정을 권고했다. 성매매 장면이나 성추행 묘사, 그리고 유혈이 낭자한 폭력 장면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OTT 영상의 대부분이 장편 시리즈물로 이뤄져 있어 전수 모니터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영등위에 따르면 45명의 모니터링 인력을 3인 1조로 운영하고 있어 OTT 영상의 전수 모니터링을 실시할 경우 시간 및 인력 부족으로 인해 대상물을 제한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랜덤 샘플링’ 방식으로 장편 시리즈의 일부 회차만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리즈물은 회차에 따라 선정성, 폭력성 등 내용정보 항목의 표현 정도가 상이한 경우가 많아, 모니터링되지 못한 회차에서 청소년 보호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OTT가 자체적으로 영상의 연령 제한등급을 분류하기 시작하면서 등급 수준이 대폭 낮아지고 있고 부적절한 등급분류사례가 속속들이 적발되고 있다”며, “청소년들이 마약이나 선정적인 장면들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모니터링 인력 확대 등 자체등급분류의 적절성을 보다 면밀히 감시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윤희 영상물등급위원장이 지난 2월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OTT 자체등급분류제도 설명회’에서 제도 도입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사진=영상물등급위원회

OTT 환경의 변화와 자체등급분류의 필요성

국내에서 영상물을 배급할 때에는 반드시 영등위에서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 들어 심사대상인 콘텐츠 수가 급격히 증가해 등급분류 심사가 지연되는 경우가 다발했다. 이 때문에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업계의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트렌드에 민감한 콘텐츠 산업의 경우 적시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오랜 협의를 거쳐 지난해 9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OTT 사업자들을 비롯한 온라인비디오물 제작업체들의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신청이 완료됐다.

OTT 자체등급분류 시행 전 우리나라의 ‘방송프로그램’은 방송사가 자체등급을 부여한 후 사후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반면 OTT 사업자들은 ‘비디오물’에 대해 사전에 영등위를 통한 등급분류를 받아야 했다. 현재는 OTT 사업자들이 자체등급분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신속한 콘텐츠 유통이 가능해졌다. 오리지널 콘텐츠 외에 OTT와 방송사 간 협업 콘텐츠 등을 선보이게 되는 경우에도 방송 프로그램 공개와 함께 OTT 콘텐츠 공개를 할 수 있게 돼 보다 다양한 콘텐츠 제작 및 공개가 가능해진 상황이다.

해외 제도의 시사점

사실 민간이 등급을 분류한다는 개념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는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등급분류를 한 지 오래다. 미국에서는 미국 영화협회(MPA) 소속의 등급분류관리국(CARA)이 영화에 대해 심의를 한다. 일본 역시 주요 영화사들로 구성된 영화윤리관리위원회가 영화 및 비디오물에 대해 등급분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민간에 의한 등급분류제도에 대해 사업자들 간의 경쟁으로 콘텐츠 표현 수위가 높아지거나 자체 심의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온 것 또한 사실이다. 문체부는 자체등급분류제도 도입 당시 이러한 우려 역시 고려해, 관련 업무 실태를 지속적으로 조사, 제도 운영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영등위 자료에서 드러나듯 실제로 심의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업계의 자정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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