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 유쾌한 시선으로 따라가는 금기‘였던’ 영역, ‘성+인물: 대만편’

넷플릭스 오리지널 토크쇼 ‘성+인물: 대만편’ “성숙한 시선-고민의 흔적 엿보여” 호평 잇따라 ‘알지만 몰랐던’ 대만, 사랑할 자유가 보장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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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형보다 나은 아우가 있을 수 있다.

<성+인물: 대만편>이 전편에 쏟아진 혹평을 조금씩 지우며 반전에 성공하는 모양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일본편과 달리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작품은 공개 11일차인 오늘(7일) [데일리 OTT 랭킹] 넷플릭스 차트 10위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성+인물>은 방송인 신동엽과 성시경이 미지의 세계였던 성과 성인 문화 산업 속 인물들을 탐구하는 신개념 토크 버라이어티쇼다. 지난 4월 공개된 6부작의 일본편은 시청자들을 만남과 동시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성 착취적인 성인비디오(AV) 산업을 미화했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출연 배우들의 주장대로 스스로 원해서 그 일을 하고 있고, 촬영 현장이 편안하다고는 해도 대부분 AV는 내용 자체가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펼쳐진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MC를 다수 맡고 있는 신동엽이 이같은 유해한 콘텐츠에 출연한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SBS <TV동물농장>에서 하차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신동엽의 의연한 대처로 하차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그 후로도 <성+인물>을 둘러싼 여론은 부정적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일본편을 향한 부정적 여론 탓에 속편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넷플릭스와 제작진은 또 한 번의 모험에 나섰다. 대만편을 통해서다. 제작진은 일본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만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성 문화를 알게 됐다고 밝히며 ‘자유’의 관점에서 성을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만편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만은 성인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성인 박람회가 10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아시아 최초 동성혼을 합법화한 곳이다. 지난 8월 29일 공개된 대만편은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성인 엔터테인먼트에서 성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Sex(성)과 Gender(젠더)를 들여다본다.

사진=넷플릭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대만의 성인 박람회 ‘TAE(Taiwan Adult Expo)’를 다룬다.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에서 열리는 TAE는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했을 정도로 그 역사가 길다. 이는 대만에서 성인 엔터테인먼트가 얼마나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지와 그에 대한 팬덤이 얼마나 크게 형성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람회의 일부 이벤트는 입장료 외에 별도의 참가비를 받기도 했다. 이들 유료 이벤트는 대부분 AV 배우, 섹시 콘셉트 모델 등과의 신체 접촉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신동엽과 성시경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한 ‘인체천당로’ 이벤트 참가자는 자신을 고등학교 윤리 교사라고 소개해 놀라움을 안기기도. 그는 학생들도 선생님이 TAE를 방문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직업과 사생활은 엄격히 구분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대만은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되는 국가인 만큼 그의 친구나 동료들이 인터뷰를 볼 수도 있지만, 출연자는 시종일관 “개인의 취향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

작품이 전편과 달리 호평을 받고 있는 데는 두 번째 에피소드의 힘이 컸다. ‘사랑할 자유’라는 부제로 소개된 해당 에피소드는 게이 부부와 레즈비언 부부 등 여러 성 소수자 커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출연 커플들은 대만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회적 지지가 필요했는지 강조하며 특히 가족들의 응원 덕분에 사랑을 지킬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한 게이 커플과 함께 출연한 어머니는 “아들이 행복한 거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며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거리 운동에 함께 나섰다는 사실을 밝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레즈비언 부부의 임신과 자녀 계획 등 다른 LGBT 콘텐츠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랑(애칭, 늑대라는 의미)과 투투(애칭, 토끼라는 의미) 부부는 랑의 부모님과 함께 살며 투투가 먼저 임신을 했다. 동성혼이 합법인 대만이지만, 시험관 시술은 여전히 이성혼 여성에 한해 가능하다는 점에 아쉬움을 토로한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후 아이 하나를 더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지 않았을 뿐, 임신하지 않은 사람이 임신한 사람을 위해 조금 더 움직이고 조금 더 양보한다는 사실은 여느 부부와 다르지 않다.

이들 부부와 함께 사는 랑의 부모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랑의 아버지는 “아무리 합법이라고 해도 대만 사회에서 동성애자는 여전히 극소수”라며 “많은 사람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텐데, 우리(부모)라도 딸의 편이 돼주고 싶었다”며 두 사람의 결혼에 찬성한 이유를 밝혀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사진=넷플릭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다섯 청춘 남녀와 MC들이 대만 2030 세대의 연애와 섹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은 성과 연애를 둘러싼 한국, 대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며 유쾌한 대화를 펼친다. 해당 에피소드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에 있어서도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만의 인식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성+인물: 대만편>의 다섯 에피소드 중에는 일본편에서 큰 비판을 받았던 성인 엔터테인먼트를 다룬 분량도 적지 않다. TAE와 JKF를 다룬 첫 번째 에피소드와 세 번째 에피소드가 바로 그것. 하지만 일본편과 대만편의 가장 큰 차이는 성에 접근하는 관점에 있다. 일본편이 성을 둘러싼 ‘행위’에 초점을 맞췄다면, 대만편은 성을 둘러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소통’에 중점을 둔 것이다. 덕분에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이 관련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줬는지, 또 이들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등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여전히 아시아 국가의 대부분은 성을 금기의 영역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성’이라는 주제에는 어김없이 비밀, 절제, 조심 같은 단어가 따라붙고, 연인들은 물론 부부 사이에서도 활발한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인물: 대만편>은 이처럼 조심스럽기만 했던 주제인 Sex(성)와 Gender(젠더)를 유쾌한 시선으로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그러하듯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하지만 “매우 불호”를 외치는 이들에게도 생각할 과제와 그에 따른 소통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니, 프로그램의 취지는 제대로 살린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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