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에서 정신 놓치고 올 앳 원스에서 후다닥 끝나는 영화 [리뷰]

통계적으로 황당한 행동으로 멀티버스 이동해 정보 습득 능력 갖추는 주인공, 비참한 이민자의 삶 속에 주어진 난관을 사랑으로 극복한다는 주제 복잡한 화면 구성과 당황스러운 전개에 스토리 따라가기 힘든 도전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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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스틸컷

뭔가 정신이 없다. 후다닥 돌아가는데, 난잡하게 당황스러운 장면들이 계속 쏟아져나온다. 그러다 영화가 끝난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니 갑자기 영화관이 나오더니 2부가 이어지고, 뭐 하나 제대로 안 풀려서 답답한데 3부라고 그러더니 키스 장면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버린다.

뭔가 탄탄한 스토리를 구축하고 수 많은 이야기를 몰아넣은 ‘멀티버스(Multi-verse)’ 영화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정작 영화를 보는 내내 스토리를 따라가기 위해 몇 곱절 집중을 해야하는 영화였다. 감독의 의도가 이런 복잡한 멀티버스에 대한 개념 이해였다면 관객의 혼돈은 성공이겠지만, ‘재밌다’는 입소문을 타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걸어나왔다.

한국에서는 11월 15일 기준 30만명 남짓의 관객 숫자 길래 예상대로 남들도 재미없는 영화였다고 생각했구나 싶었는데, 북미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7천만 달러, 세계 기준 1억 달러의 티켓 수입을 올리고 있더라. 제작비와 마케팅비 합계가 4천만 달러 남짓인 걸 생각해보면 쏠쏠히 남는 장사를 한 영화다.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길래 미국에서는 그렇게 많이들 봤나? 이민자의 각박한 삶에 다들 공감해서?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스틸컷

황당 행동으로 멀티버스 이동이라는 대박 소재, 쪽박 셋팅

확률적으로 0에 가까운 느닷없는 행동을 하면 다중 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나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는 참 기발했다. 날 괴롭히는 악당에게 ‘사랑해요(I Love You)’를 진심을 담아 외치는 것 같은 황당한 행동들,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는 행동, 이런건 재밌어서 ‘밈(Meme)’처럼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렇게 황당한 행동을 해서 다중 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나와 연결되면, 그 중 누군가가 갖고 있는 황당한 능력을 내 인생에 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는 정말 짜릿하다. ‘미친 짓’이 도대체 뭘까, 내 주변에서는 뭘 해 볼 수 있을까는 생각까지 했다. 소재 자체는 정말 대박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여성용 자위기구가 등장한다거나, 볼록한 제품들을 남성의 항문에 넣는 방식으로 황당함을 강조하는 장면에서는 ‘오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저렇게까지해서 다른 세상의 나를 만나고 싶지는 않더라.

이런 소재가 3류 인생을 살고 있는 이민자의 삶 속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파이더 맨’이나 ‘배트맨’처럼 가면을 쓰고나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면, 이른바 ‘팬덤’이 생기고 황당한 행동하기가 유행처럼 번졌을 것 같은데, 북미쪽 SNS를 봐도 그런 일탈행동을 했다는 기사는 없더라. ‘팬덤’이 생기기에는 역부족의 셋팅이었다.

즉, 대박 소재를 쪽박 셋팅에 활용한 탓에 ‘대박 팬덤’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셈이다.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스틸컷

베이글, 그건 혹시 ‘지옥’을 상징하는 매개체였나?

미국의 여느 동양인 이민자들처럼 코인 세탁소를 근근히 운영하며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는 주인공의 삶 자체가 이미 보는 이로 하여금 괴로움에 빠져들게 한다. 거기에 남편은 세상 모르고 순수한 것만해도 단점인데, 심지어 영화 초반부터 이혼하자는 서류를 갖고 오고, 딸은 대학교를 그만두고 동성연애를 하며 엇나가는 탓에 어머니의 속을 긁고 있다. 아버지는 잉여처럼 오래 살아 딸의 고난을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내 딸이 아니다’는 식으로 억압적인 모습을 보인다. 딸 아이의 동성연애를 세대가 완전히 다른 아버지에게 알려주기가 너무 괴롭다. 자기 자신도 압박에 사로잡혀 자기 멋대로인 것 같은데, 딸 아이도 엇나가며 자기 멋대로인건 마찬가지다.

거기다 세금 신고를 잘못했다고 미국 국세청(IRS)에서 추적이 들어오고, 인생이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순간에 이르렀는데, 느닷없이 남편이 정신병 걸린 것 같이 이상한 사람이 되더니, 다른 세계의 자신이 다중 우주를 돌아다닐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다 빌런에게 공격을 받아 유명을 달리했단다. 자신은 그런 복잡한 과학 지식을 배운 적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 몇 가지 황당한 사건들을 겪으며 이상한 남편이 말하는 내용을 믿게 되고, 운좋게 자신을 찾아온 다른 세계의 남편 덕분에 다중 우주에서 또 다른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순식간에 배울 수 있게 된다.

그 ‘알파’ 세계에 살고 있는 남편, ‘알파 레이먼드’가 경고했던 빌런(Villain)이 알고보니 자기 딸의 모습을 한 ‘조부 투바키’였고, 멀티버스의 모든 자신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공유하는, 일종의 마법사 같은 존재였다. 그 ‘빌런’이 살던 세계의 주인공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주인공의 세계에까지 와서 위협을 시도한다. 그러다 느닷없이 외딴 세계로 데리고 가 베이글 모양의 ‘모든 것을 다 넣은 공간’으로 끌어들이려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끝까지 저항하다, 뚱딴지 같이 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방법을 발견하면서 베이글 속에 들어가는 딸을 구출해낸다. 삶의 방향성이 순식간에 바뀌니 ‘All at once’로 삶의 복잡한 상황이 해결되고, 어벙벙하던 남편에게 키스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베이글이 뭔가 지옥같은 곳, 딸이 구렁텅이로 빠지는 곳,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곳, 블랙홀 같은 곳이라는 느낌인데, 왜 이걸 하필 베이글로 정했는지 감독의 의도를 도통 알 수가 없다. 베이글은 아침 식사 대용으로 간단하게 먹는 저렴한 음식이라는 느낌인데, 그런 음식의 이미지가 지옥 같은 곳을 상징한다는 주장에 납득하기는 어렵다. 영화 내에서 나오는 설명이라고는 ‘조부 투바키’가 모든 것을 다 집어넣었더니 베이글이 됐다는 말만 나온다.

손가락이 소세지가 되는 세계, 요리사가 되는 세계, 무술 챔피언의 실력을 이용해 여배우로 사는 세계 등등 다양한 세계를 순식간에 경험하는 장면들, 그 세계의 자신으로 빙의하는 장면들이 중간중간 나오는데, 무술 챔피언인 세계는 현재 주인공의 인생과 정반대의 삶인만큼 영화적인 맥락이 이해가 가지만, 손가락이 소세지인 세계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100,000년 전의 유인원부터 그런 손가락이었다는 장면은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그냥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면 모르겠는데, 왜 하필 소세지냐고? 겨우 달걀 돌리는 모습 보여줄려고 요리사 보여준건 코스튬 비용이 너무 아깝지 않나?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스틸컷

황당함을 전략적으로 결합시키는 엄청난 조합능력

영화가 혼란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수백가지의 세상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갖고 오는 것을 빠른 장면 전환들을 엮어가며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의 세상에서 갖고 온 능력들로 저항을 물리치는 장면에서도 황당함은 계속 이어진다. 격투 장면은 홍콩의 무협영화 같으면서도 정작 코메디와 할로윈 파티가 뒤섞인 것 같다. 분명히 코믹 요소가 있어 웃어야되는데, 영화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웃을 수가 없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할로윈 코스튬에 시선이 이미 뺏겨 있기 때문이다.

딸의 모습을 한 빌런, 조부 투바키를 죽이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딸을 구하려는 모성애, 그 모성애에 반발한 ‘알파’ 세계의 지원군들이 순식간에 적군으로 변해 주인공을 괴롭히는 모습, 그런 시련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적군으로 변한 ‘알파’ 세계의 지원군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싸움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모습, 동시에 딸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사랑스러운 엄마’로 바뀌는 모습이, 뭐랄까, 황당하기 그지없는 장면 전환의 연속으로 진행된다. 내 삶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초고속 감정 변화와 주변 상황의 변화이지만, 멀티버스 세계에 살고 있으면 가능하다는게 감독이 던지고 싶은 메세지겠지?

영화를 따라가기 힘들었던 것과 별개로, 감독의 실험 정신만큼은 별 5개 만점이 부족한 영화다. 영화는 수십, 수백개의 ‘쇼트 테이크(Short take)’ 장면들을 조합해 멀티버스를 빠르게 여행하는 주인공의 사고의 흐름을 표현해냈다. 멀티버스를 다룬 영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기껏해야 역사의 어떤 지점이 바뀐 상태인 새로운 역사를 주인공이 찾아내는 수준에 불과했었다. 영화적 장치로 멀티버스를 여행하는 것은 웜홀-화이트홀이라는 물리학적 지식을 담은 ‘소용돌이(Vortex)’ 정도에 불과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같은 영화는 없었다.

거기다, 요즘 수학계에서 뜨고 있는 ‘네트워크 이론’을 도입해 다중 우주의 연결 고리를 설명하는 점도 신선하다. 네트워크 이론이란, 여러개의 노드(Node)가 연결되는 방식이 우리의 중학시절에 배운 ‘한 붓 그리기’에서 봤던 것 같은 연결 구조를 갖고 있는 시스템을 설명하는 수학인데, 다중 우주가 계단식 순차형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조금씩 바뀌는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복잡계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이론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시각적으로 뛰어난 다중 우주론 설명일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놀라운 수준을 보여줬다.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스틸컷

영화가 전달하려고 하는 ‘가족간의 사랑’, ‘관심과 다정함’이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진정한 무기라는 주장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얼마나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가 난해한 것을 넘어 스토리를 따라가기 힘들만큼 장면 전환이 너무 황당하고 다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티버스라는 물리학적으로 복잡한 개념을 화면에 구현하는 창의적인 방법이라는 측면에서는 충격적인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사족을 달면, 한국에서 영화가 성공하고 싶었으면 제목을 ‘심연(深淵)의 멀티버스’, 아니 그냥 ‘멀티버스’로 바꿨으면 어땠을까 싶다.

10분 추가한 연장판이 나온다니, ‘All at once’ 파트에서의 급작스러운 전개만큼은 좀 더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정리 안 해줘도 되니까, 내가 돈 있으면 판권사서 황당한 행동으로 다른 세계의 나 자신과 연결되는 아이디어를 ‘밈(Meme)’으로 만든 시리즈물로 만들어보고 싶다. 스타게이트가 그렇게 영화는 중박, 드라마는 20년짜리 초대박을 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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