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마주봐야 하는 전쟁의 민낯,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리뷰]

동명 작품들 중 가장 강하게 드러난 자아비판 실존 인물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 등장 압도적인 영상미·사운드, 몰입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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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전 세계에서 출간된 전쟁 소설 가운데 가장 명작으로 꼽히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쓰여진 작품이다. 작가 스스로는 반전(反戰)영화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의 말을 빌려 전쟁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때문에 나치 정부는 그의 작품들을 금서로 지정하며 탄압을 가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동명의 소설을 영상화한 앞선 두 번의 영화가 미국에서 제작된 것과는 다르게 독일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덕분에 이번 영화에서는 독일의 자아비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평을 듣고 있다. 에드워드 버거(Edward Berger) 감독은 “레마르크의 소설은 독일인들로 하여금 두 차례의 전쟁으로 뒤바뀐 세계의 역사에 대해 죄책감을 곱씹게 만든다. 소설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 자세히 그려보고 싶었다”며 이번 작품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사진=넷플릭스

주인공 파울은 전쟁이 일어나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명을 위조해 친구들과 함께 군에 자원입대한다. 피 끓는 청춘의 치기였고,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며 학교와 사회가 부추기던 때였다. 열일곱 파울과 친구들은 전사자가 남긴 옷을 입고 들뜬 마음으로 서부전선을 향한다. 어제까지 친구였던 이들은 이제 전우가 됐다.

독일의 서쪽 끝에 맞닿은 북프랑스 라말레종에 도착한 파울과 친구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전장의 열기가 아닌 혹독한 추위와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포탄이었다. 고향과 가족 생각이 간절해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에도 적군은 감상에 젖을 틈을 주지 않는다. 이동 탄막 사격이 몇 분 간격으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곧 보병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벙커가 무너진다.

파울은 판자 밑에서 목숨을 부지했다. 파울을 찾아낸 전우들의 반가운 목소리와 살아남았다는 얼떨떨함도 잠시, 그에겐 전사자들의 인식표를 수거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파울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인식표를 수거하다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던 전사자와 마주한다. 함께 서부전선으로 온 세 친구 중 하나다. 친구의 인식표를 떼어낸 후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파울은 추위에 떨던 친구를 떠올리며 옷깃을 여며주려 한다. 하지만 꽁꽁 얼어버린 손으로는 진흙이 뒤엉킨 옷깃을 여미는 데 역부족이다. 모든 전쟁 이야기가 그렇듯, 주인공은 이후로도 하나 둘 친구였던 전우를 잃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울의 눈에선 조금씩 광채가 사라져 간다.

사진=넷플릭스

영화의 시작인 1917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3년째에 접어든 해였다. 독일 서부전선은 참호전의 양상을 띠었고, 독일과 프랑스 군은 각자의 진지에 대기하고 있다가 ‘돌격’ 명령과 함께 두 발로 뛰어나가 적군과 맞붙어야 했다. 적군과 아군의 거리는 두 발로 뛰어 몇 분 내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 때문에 영화에선 등장인물들이 적과 실제 뒤엉켜 싸우는 장면이 많다. 검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장면, 화염 방사기로 살아있는 이에게 불을 붙이는 모습, 고통스러워하는 전우들. 카메라는 이런 끔찍한 모습을 담아내는 데 거침이 없다. 하지만 당시 서부전선에 투입된 독일 병사들의 평균 생존 기간이 5일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주인공은 2년을 버텼으니, 영화는 실제 전쟁만큼 끔찍하지는 않은 셈이다.

사진=넷플릭스

영화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파울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관객들은 파울의 눈을 통해 전우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한 전우는 성냥갑에 작은 벌레를 잡아 키우고, 친구는 하룻밤을 함께 보낸 여인의 손수건을 소중히 품으며 마음을 달랜다. 하지만 파울은 어떤 것도 지니지 않는다. 그의 관심은 전우들, 그리고 생존을 위한 음식 정도가 전부다. 때문에 그것들을 하나씩 잃을 때마다 파울의 눈에선 조금씩 빛이 사라져간다. 그렇게 파울은 감정과 영혼을 잃고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인 기계로 전락한다. 주연 배우 펠릭스 캄머러는 영화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쟁의 한가운데 선 처절한 감정을 훌륭히 소화했다. 관객은 그를 통해 광기와 허무, 사람을 살인 기계로 만드는 전쟁의 민낯을 보게 된다.

사진=넷플릭스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원작 소설, 그리고 앞선 두 편의 영화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실존했던 인물인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를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실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제국의 대표로 휴전 협정에 나선 인물이다. 에르츠베르거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지옥 같은 전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협정이 진행되는 호화 열차에 탄 양측의 대표단은 전혀 급할 것이 없다는 듯 커피를 즐기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아무렇게나 남긴다. 프랑스를 비롯한 협상국은 항복에 가까운 굴욕적인 조건에 서명한다면 휴전에 동의하겠다고 말한다. 에르츠베르거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을 떠올리며 더 이상의 헛된 죽음을 막기 위해 협정서에 서명한다. 영화에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굴욕스러운 조건에 서명한 3년 후 에르츠베르거는 독일의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살해당했다.

사진=넷플릭스

압도적인 영상미는 전쟁의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안개가 깔린 고요한 숲이 보인다. 반어법으로 쓰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작품은 다양한 시각적 알레고리를 중간 중간에 배치했다. 커다란 나무의 위압감, 숲에 깔린 안개, 너른 들판에 내리는 눈, 눈밭 한편에 몸을 웅크린 여우 가족. 이런 숨 막히는 장면에 더해진 사운드는 몰입감을 더한다. 이 때문에 바로 뒤 이어지는 전쟁 묘사에는 더 경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듯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재밌거나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다. 원작이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구 한편에서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오늘날만큼 전쟁의 민낯을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한 때가 있을까?

올해 초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을 통과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충돌의 당사자인 두 나라의 아무런 죄 없는 국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주변국은 물론 전 세계에 전쟁의 피해가 번지고 있다. 전쟁의 긴 페이지에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불편하지만 직시해야 할 오늘날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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