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내 OTT 도전의 종말? 왓챠 인수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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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왓챠 이미지 캡쳐

최근 벤처투자업계에 왓챠 매각설이 나돌고 있다. 왓챠는 지난해부터 상장 주관사를 선임하고 1,000억원 규모의 프리 IPO(상장 전 자금조달)에 나섰으나, 프리 IPO에 실패하면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의 OTT 가입자 수익만으로는 회사 운영이 불가능한 만큼, 외부 투자 없이는 매각 또는 폐업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평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일, 왓챠의 창업자 박태훈 대표가 투자자들에게 유상증자 요청, 투자 유치 및 회사 매각 등 다양한 옵션을 여는 메세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창업한 왓챠는 ‘왓챠피디아’라는 이름의 영화 평점 사이트를 기반으로 시작하여, 2016년 OTT 서비스로 확대 성장했다. 2020년에는 시리즈D로 360억원을 투자받으며 기업가치 3,000억원 평가를 받았다.

창업 후 지난 6년 동안 왓챠는 국내 대표적인 자수성가 OTT 플랫폼으로 불리며 성장해왔다. 국내 3대 OTT 플랫폼 중 웨이브 뒤에는 지상파와 통신사가, 티빙 뒤에는 CJ ENM이라는 대기업이 버티고 있어, 이 둘과 비교하면 왓챠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하여 넷플릭스, 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국내 OTT 플랫폼이다.

지난 6년간의 고속 성장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왓챠에서 국내 OTT 플랫폼의 미래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프리 IPO 실패는 시장이 왓챠의 경쟁력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왓챠가 하반기 기업공개를 준비하던 다음 단계 전략을 우선 접고,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도 급한 불 끄기 전략으로 보인다. 모 벤처캐피털(VC)에 따르면, 박태훈 대표가 “올가을부터 월 단위 흑자를 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VC 업계 관계자는 “왓챠가 유증 등으로 대규모 자금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선급금을 많이 지급했는데, 투자 유치가 불발되고 재무 부담이 커지자 매각으로 선회한 듯하다”는 평이다.

왓챠가 프리 IPO에 실패한 원인은 엔데믹에 따른 OTT 가입자 감소세와 더불어, 국내 자본 시장의 침체 때문이다. 스타트업 회사들은 2020년, 2021년에 비해 투자금 모집이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익을 내지는 못하지만 미래 가능성이 있는 곳에 큰 투자가 이뤄졌던 지난해와는 다른 분위기가 올해 시장에서 읽힌다.”라며 저조한 투자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지난해 왓챠는 일본 사업체 포함된 연결 기준으로 708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248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재무제표상의 현금흐름표에서 가장 큰 비용이 판권의 취득이다. 지난해 투자 활동으로 총 374억원을 썼는데, 이중 판권 취득에 들어간 비용이 270억원이다. 왓챠는 ‘왓챠 2.0’으로 영화 스트리밍에 이어 음악, 웹툰까지 서비스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같은 이유로 음원 스트리밍 판권 취득에 270억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투자 유치액과 사업 확장에 쓴 투자액을 비교해 볼 때, 지난해 판권 취득에만 시리즈D 투자 유치금의 최소 2분의 1, 혹은 그 이상을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상당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가입자 유치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만큼, 현재 OTT 시장 경쟁력의 핵심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라는 점에서 볼 때, 콘텐츠 판권 확보를 위해 더 큰 투자 비용이 들어가야 왓챠가 자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쿠팡플레이

국내 왓챠의 경쟁사들은 이미 스스로의 자생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쿠팡은 손흥민 선수의 토트넘 홋스퍼를 국내에 초빙할 뿐만 아니라, 경기를 독점 생중계하는 데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웨이브는 오는 2025년까지 1조원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근 CJ ENM의 티빙은 KT의 시즌을 인수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워 국내 OTT 1위 업체로 우뚝 서기 위해 다방면의 투자 및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속칭 ‘자수성가’한 왓챠는 경쟁사들만큼 투자할 여력이 없다.

이른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랭이 찢어진다’는 옛 속담대로, 무리한 따라가기에 대한 여러 비난에 직면한 끝에, 왓챠의 박태훈 대표는 ‘왓챠 2.0’ 잠정 중단을 선언하였으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팀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사진=옥수수(좌), 푹(우) 이미지 캡쳐

국내 첫 OTT의 병합은 옥수수(oksusu)와 푹(POOQ)이었다. SK텔레콤의 옥수수와 지상파 방송 3사의 푹이 힘을 합쳐 만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Wavve)가 출범 한지 한 달 만에 옥수수는 99만 명이었던 가입자가 187만으로 뛰었고, 푹 또한 72만 명에서 130만 명으로 증가했다.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큰 상승이었다.

이렇게 두 회사가 합병하기 쉬웠던 이유는 옥수수와 푹이 웨이브로 합쳐졌을 땐 이해관계가 비교적 단순했었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콘텐츠가 부족했고 푹은 가입자 유치에 애를 먹고 있었다. M&A를 통해 방송 3사는 콘텐츠 제작에, SK텔레콤은 플랫폼 운영과 콘텐츠 유통에 집중해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기 채널을 정리하고 일반 화질(SD)을 기본으로 설정하였으며 재생 오류가 자주 발생해 옥수수와 푹의 단점만 모아놓았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사진=티빙(좌), 시즌(우) 이미지 캡쳐

비슷한 사례로 최근 티빙과 시즌이 합병되면서 웨이브를 따돌리고 토종 OTT 가운데 1위 사업자로 우뚝 선 것은 물론, 시즌의 가입자와 KT 가입자 모두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웨이브와 달리 사전에 미리 전략을 준비하였다. 먼저 마케팅 툴을 확보하여 ‘마이케이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티빙 서비스 혜택 사전알림을 신청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 증정 이벤트를 진행하였으며 글로벌 유통채널 부재라는 꼬리표를 시즌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M&A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인수, 합병을 통한 산업 구조조정의 시작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20년 겨울에 마무리된 시리즈D 투자에서는 3천억원의 기업가치로 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왓챠의 현재 기업가치는 최소 3,000억원 이상, 왓챠 내부적으로는 5천억원 이상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IPO 실패 및 차별화된 콘텐츠가 없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 가치는 더 하락세로 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티빙과 시즌의 합병 당시 시즌의 기업가치는 1,000억 대로 대기업인 CJ ENM이 인수하기에 어렵지 않은 금액이었다.

현재 쿠팡플레이, 웨이브, 리디가 왓챠를 인수하기 위해 경쟁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시너지 및 M&A 인력 융화 측면에서 본다면 쿠팡플레이, 웨이브, 리디 순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아울러 넷플릭스와 디즈니+ 같은 해외 기업은 왓챠가 가진 국내 유통 채널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견이다.

쿠팡플레이는 막대한 자본력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어 가장 유력한 인수 경쟁자 중 하나다. 이미 자금력을 앞세워 스포츠 중계권 시장의 선두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고, <유니콘>이라는 예능을 통해 자체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OTT 시장의 후발 주자로서 영화, 드라마, 예능에는 확실히 다른 OTT 플랫폼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있는 만큼, 쿠팡플레이의 이점을 살려 티빙을 제치고 국내 OTT 시장 1위를 노릴 것이라는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도 있다.

사진=쿠팡

쿠팡이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은 왓챠와 같은 스타트업 형태의 인력 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인수합병 실패 사례의 대부분은 기업문화 충돌에 따른 결과라는 M&A 업계의 평이 있고, 두 조직을 합병할 때 단순히 법적, 세무적, 재무적인 노력만으로는 성공적 통합이 쉽지 않다는 것이 인수합병에 있어 또 하나의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인적 융화라는 관점에서 쿠팡플레이가 티빙보다 시너지가 크리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사진=웨이브

웨이브 또한 인수자 물망에 오르고 있고, 특히 티빙의 시즌 합병으로 인해 국내 OTT 시장에서 순위가 밀린 만큼 OTT 순위 1위 탈환을 위해서 모회사인 SK그룹의 자금력이 동원될 수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시너지 효과는 못 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웨이브는 옥수수와 푹의 합병으로 큰 기대를 모으며 출발했지만, 기대만큼의 수익을 창출하지 못했고 내부적으로도 시스템 결함 및 콘텐츠 전략 오류로 많은 구독자가 빠져나간 사례가 있다. 또한 스타트업으로 출범한 왓챠가 대기업 SKT의 기업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며 스타트업 스타일의 경영 방식을 SKT가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어 인적 구성 여건상 조직문화 충돌로 인해 시너지 효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진=리디

최근 리디가 왓챠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소식도 나온다. 리디는 전자책 사업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으로 현재 기업가치 1.5조로 성장한 기업이다. 리디는 전자책 플랫폼에서 웹툰, 웹소설 중심의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 방향성을 설정한 후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전자책 점유율 1위를 넘어 명확한 팬덤층을 확보하였다. OTT 업종은 아니지만 같은 스타트업으로 출발하였으며, Tech 전문 기업인 만큼, 왓챠와 인적 결합에 따른 조직 융화에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보인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리디와 왓챠가 지분 맞교환 방식으로 인수합병을 논의한 상태로 알려졌다. 리디의 왓챠 인수 검토 뒤에는 두 기업의 투자자인 벤처캐피털 ‘에이티넘 인베스트먼트’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리디와 왓챠 모두 종합 콘텐츠 플랫폼을 목표로 해온 만큼, ‘에이티넘 인베스트먼트’ 입장에서는 두 기업이 의기투합할 경우 시너지가 클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리디가 왓챠의 박 대표가 원하는 기업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지에는 많은 업계 관계자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이미 CJ ENM을 비롯한 국내 기업 몇 곳에서 논의를 한 바 있지만 왓챠 관계자가 원하는 기업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몇 차례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OTT 시장의 단순 양적 성장은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왓챠가 자생이 불가능한 시점에서 어떤 결론을 맞느냐는 향후 OTT 시장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그간 연속된 투자로 빠른 성장을 추구해온 벤처기업들의 성장 전략 및 미래 전망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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