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만이 가진 매력 [리뷰]

수지 주연작 ‘안나’ 리뷰 남의 인생을 훔친 여자의 이야기 타인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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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쿠팡플레이

쿠팡 플레이에서 방영한 ‘안나(ANNA)’ 가 인기몰이 중이다. 정한아 작가의 ‘친절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한 해당 6부작 드라마는 사소한 거짓말로 시작해 이후에는 남의 인생을 훔쳐 살아가는 한 여자의 젊은 날을 그리고 있다. 해당 드라마의 흥행 원인에 대해 이주영 감독의 정제된 영상미, 주연 배우들의 열연, 탄탄한 스토리 라인 등이 꼽힌다. 다만 일각에서는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혹은 왓챠와 같이 대형 OTT 플랫폼이 아닌 쿠팡플레이에서 제공하는 해당 컨텐츠가 이토록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접근성이 낮은 플랫폼에 소비자들을 유입 시킬 수 있었던 컨텐츠 상의 공감대가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 인 것으로 보인다.

ANNA 제목의 유래, 타인의 삶에 대한 욕망

우선 ‘친절한 이방인’ 이라는 원작 소설의 제목과는 달리 별다른 특색이 없는 ‘ANNA’ 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내건 이유에 주목해볼 만 하다. 유미는 현주의 삶을 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빼앗아 ‘안나’ 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그 사실을 현주가 알게 되고 그것을 이유로 안나를 위협하자 남편 최지훈은 자신과 안나의 정치적 이미지에 타격이 갈 것을 방지하려 가차 없이 현주를 교살한다.

5화에서는 이미 죽은 현주의 환영을 보는 유미의 모습을 비춰준다.

“내가 어릴 때…어른들이 나를 공주같다고 ‘아나스타샤’ 라고 불렀어. 그래서 내 두번째 이름이 줄여서…’안나’. 그런데 사실은…’안나 앤더슨’ 이라는 여자가 이미 죽어버린 ‘아나스타샤’ 행세를 하고 살았던 거래. 그걸 알고나서 난 그 이름을 안 썼어… 네가 내 앞에서… 이렇게 있었거든. 나처럼 살아본 기분은 어땠어? …좋았어?”

안나, 라는 제목은 인간이 느끼는 시기심과 모방의 욕구, 그리고 그것의 파멸적 결과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라르는 ‘모방 욕망 이론’에서 모방 욕망을 일컬어 “타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 타인의 속성을 자기 것으로 삼으므로써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타인의 위치에 이르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욕망 (김모세, 70) 이라고 했다. 그리고 멜라니 클라이의 ‘시기 감정의 심리적 메커니즘’ 은 이와 유사하게 모방의 욕망이 어느 순간 모델이 되는 인물을 향한 적개심, 폭력으로 전환되어 발현한다고 설명한다.

현대사회는 SNS의 발달로 그 어느때보다도 타인의 삶과 성공에 노출되어 있으며 나와 타인을 비교하기에 용이한 사회이다. 타인을 시기하면서도 애정을 갖고 바라보지만 특정 지점이 기폭제가 되어 적개심으로 변환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사진=쿠팡플레이

‘안나’ 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리플리 증후군’ 이라는 용어를 탄생 시킨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태양은 가득히’ 에서도, 그리고 ‘안나’ 에서도 이러한 특정 지점이 존재한다.

“톰은 지금 디키의 눈을 보고 있으면서도 단단해서 피 가 통하지 않는 거울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톰은 가슴이 죄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는 갑자기 디키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 알지도 못했다. 그것은 끔찍한 진실처럼 톰에게 충격을 주었다. . . (87)”. ‘태양은 가득히’ 에서 톰은 디키와 자신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상적 상대로 생각을 하지만, 디키가 사실 자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동경이 적대감으로 바뀐다.

‘안나’ 에서는 이미 한 차례의 거짓된 삶을 청산하고 정직하게 일을 해서 살아보려고 노력한 유미가 현주의 부유하고 철없는 삶을 동경하다, 현주가 자신을 단지 아랫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생각하지 않으며 소모재로 생각할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고는 현주의 학위와 삶을 훔치기로 결심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시기’ 와 ‘질투’ 라는 욕망이 수면 위로 발현되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나’ 에 국한된 세상 속 느끼는 감정  ‘시기심’

호메로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작가로 유명한 헤시오드는 시기심을 칭찬할 만한 시기심과 비난받아 마땅한 시기심이 있다고 했다. 타인의 수확을 보고 자극을 받아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을 발현되는 시기심도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미국소설학회의 논문에 따르면 그런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하고서라도 시기심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감정이랄 수는 없다. 시기심은 개인의 결핍, 개인의 열등함을 충족시키고 개선하고자 하는 감정이지 세계전체의 불평등한 구조와 부조리를 개선하고자 하는 감정은 아닌 것이다. 현대 사회 속 우리는 세계의 평등과 안녕을 기원하지만 동시에 시기심이라는 욕망을 추구하면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시기심’ 과 ‘질투’에 대한 공감대

‘나’ 자신과 세계의 안녕 중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사실 유미에게만 국한되는 내용은 아니다.

“유권자들도 얼마나 복잡하냐 말이다. 이 집값은 떨어져야 하는데 내 집값은 올라야 하고 이 중소기업은 키워져야 하는데 나는 대기업을 댕겨야겠고 비정규직을 어? 차별을 하면 안되는데 내 자식은 정규직을 댕겨야 한다.”

온갖 사기로 점철된 사업가이자 정치인 최지훈이 던지는 한국 사회상에 대한 신랄한 말들은 이 사회 속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유미와 유사한 삶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더 나은 사회가 되는 것이 맞고 머릿 속 한편에는 분명히 그게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한평생 ‘나’ 의 시각 속에 갇혀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에 나에게 유리한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유미도 마찬가지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학력이 좋지 않고 집안 배경이 좋지 않으며 남루한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게으르고 돈 벌기 위한 욕심만 부리는 사람으로 취급 받는 20대 시절을 거치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만둔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게, 아니 일부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부분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산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 만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도래했다. 소설 원작에서는 단순히 비중 없는 성형외과 의사였던 유미의 남편을 정치에 욕심을 가진 IT 사업가 로 그려내어 정치 판의 이면을 보여준 이유 역시 그런 이기적 이익 추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 속에서 기득권 층은 이미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린 벨트를 풀어 달라는 요구를 하며 탈세 시도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의 이익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여지없이 버려버린다. 그리고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은 이런 기득권의 행태를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성공을 ‘시기’하고,  성공을 상징하는 아파트와 차, 좋은 옷과 구두를 소유하며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한다. 인간의 ‘시기’’ 와 ‘질투’ 라는 감정을 설득력 있게 잘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진=쿠팡플레이

 ‘시기심’ 의 대척점 ‘신의’, 그것의 어려움과 숭고함

그러나 ‘안나’ 는 ‘시기심’ 이라는 감정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도 그것을 경계하고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해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유미의 욕망이 옳지 않은 것임을 드러낸다.

“미약하지만 신의를 지키고 싶습니다.”

유미가 자신과 최지훈이 연루되어 있는 모든 일들을 검찰에 알리기 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의 사람으로 일해주던 조비서를 해고하려 하자 조비서는 유미가 어떤 일을 했더라도 피용자로서 신의를 지키고 싶다 말한다. 그러자 유미는 공허한 눈빛으로 자신은 한번도 신의 같은 것을 지켜보지 않았다 읊조린다.

“너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 나는 너의 이야기를 밝힐거야.”

유일하게 유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지원은 유미가 거짓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고백하기도 전에 모든 진실을 알고있었다.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유미의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기자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지훈이 서울 시장이 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

‘신의’ , 믿음과 의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그 믿음과 의리는 자신에 대한 확신과 노력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욕망을 때론 억제하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결국 개인인 ‘나’ 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사회’ 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숭고하며 가치가 있다.

평범한 우리가 신의를 추구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보이던 유미도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리’ 라는 이름으로 캐나다에서 중국인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다시 거짓 된 삶으로 도망친 것이다. 열린 결말로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시청자로 하여금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욕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쿠팡플레이에 접속해 볼만한 작품이며 최근의 흥행이 충분히 납득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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