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의 성지 미국에서 벌어진 실종 사건 ‘세실 호텔 실종 사건’ [리뷰]

이번 주 추천 다큐, 이거 볼래? 넷플릭스 오리지널 ‘크라임 씬: 세실 호텔 실종사건’ LA 세실 호텔,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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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크라임 씬: 세실 호텔 실종사건'(이하 크라임 씬)은 공개 당시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우리나라 추리 예능의 한 획을 그은 ‘크라임 씬’과 제목이 같아 예능 감독이 넷플릭스로 이적한 것이 아니냐에 대한 관심이었다.

단순히 이름만 같을 뿐, 이 다큐는 예능과는 일절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예능 크라임 씬만큼 우리의 흥미를 끌기 충분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다큐 크라임 씬의 연출을 맡은 조 벌린저는 각종 영화제에서 여러 번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크라임 씬과 비슷하게 범죄 다큐멘터리를 주로 다뤘는데, 그의 필모그라피 중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 역시 대중의 큰 관심을 끌은 바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중 범죄와 관련된 작품들은 대부분 엄청난 흡입력을 갖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뛰어난 연출력과 구성은 우리를 세실 호텔의 현장으로 끌어들이기 충분하다.

※ 이하의 내용에는 결말과 필자의 의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넷플릭스

램 엘리사의 실종과 음모론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던 대학생 램 엘리사는 미 서부로 여행을 떠난 후 부모님과 연락이 두절된다. 이에 경찰의 수색이 시작되고 미국은 음모론으로 들썩이게 된다.

엘리사는 세실 호텔에 들어간 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실종된 지 6일이 지나도 이렇다 할 단서가 없자 경찰은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면서 CCTV 등 몇 가지 증거를 대중에 공개했는데, CCTV는 음모론의 씨앗으로 대중들의 먹잇감이 된다.

사실 세실 호텔은 LA에서 악명 높은 호텔 중 하나였다. 객실이 700여 개나 되는 대규모 호텔이지만, 대공황 후 돈이 없는 사람들이 장기 투숙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호텔 주변에 있는 스키드로’Skid Row’는 노숙자 거리로, 각종 약물 투약이나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또한 세실 호텔에는 오스트리아의 유명 연쇄살인마 ‘잭 운터베거’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리처드 라미레즈’가 투숙한 적이 있어 위험지대라는 인식은 더욱 만연했다. 그러나 여행객들은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저렴한 가격에 홀려 숙박을 결정하게 되는 구조였다.

이러한 호텔 사정으로 일명 ‘방구석 탐정'(집에서 탐정처럼 활동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가설과 음모론 제기에 나섰다.

엘리사의 수상한 행동과 가설

CCTV 속 엘리사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엘리베이터로 뛰어 들어온 후 엘리베이터 버튼을 일렬로 누른다. 그 후 엘리베이터 밖에 나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듯한 액션을 취하더니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온 후 다시 나간다. 그동안 엘리베이터 문은 열려있고, 그가 엘리베이터를 떠난 직후 문은 닫힌다.

방구석 탐정들은 LA 경찰이 이 사건에 가담하고 있으며, 무언가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고, 엘리사와 관련된 여러 의문을 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하고 나섰다. 그들은 ‘엘리사는 누군가에 쫓기고 있었으며, 엘리베이터 문이 장시간 열려있는 것은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었다’는 주장과 ‘CCTV 영상의 타임코드가 훼손되어 있고 재생 속도가 지나치게 느려 누군가 영상을 고의로 편집했다’는 가설을 세워 음모론을 만들었다.

그러나 실종 19일째 되는 날 호텔 물탱크에서 엘리사의 시신이 발견된다. 당시 물탱크의 뚜껑은 9kg였는데, 언론은 이 물탱크의 뚜껑이 닫혀있었다고 보도한다. 이에 따라 음모론은 더욱 부풀려지고 누군가 엘리사를 살인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범인 수색까지 이어진다.

이에 세실 호텔에 투숙했던 한 데스메탈 가수는 엘리사를 제물로 곡을 썼다는 의심을 받았고, 웹 탐정들의 테러로 SNS와 유튜브 계정이 해지되어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없게 됐다. 또한 LA 경찰에 대한 불신은 더 커져 엘리사의 죽음에 경찰이 가담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사진=넷플릭스

공시성과 여론몰이

이 사건의 진실은 양극성 장애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엘리사 본인의 SNS에 적혀있듯 그는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던 환자였다. 사인을 찾기 위해 그를 부검한 결과, 복용했어야 할 약물 수치가 현저히 낮아 원래 앓고 있던 질환이 심해져 결국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추정됐다. 물탱크 뚜껑이 닫혀있던 것은 언론의 오보로, 최초 발견자는 뚜껑이 열려있었다고 재차 증언했다.

이러한 진실에도 엘리사의 죽음은 거대한 음모론으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중은 단순한 사고사임을 부정하고 그 뒤에 숨겨진 이면을 파헤치고 나섰다. 다큐에서는 이 사건을 ‘공시성’으로 설명한다. 의미가 있는 우연의 일치로, 몇 가지 의미심장한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그 사건들 사이에 우연이 아닌 무언가가 더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는 더 이상 진실이 없다. 다만, 그들의 먹잇감이 된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엘리사를 살인했다는 의심을 받은 데스메탈 가수는 가수 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고, 그렇게 잊혀졌다. 사람들은 세실 호텔의 평판에 엘리사의 죽음을 더해 큰 흥미거리로만 생각했을 뿐, 아무도 진실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사실은 외면하고 그저 믿고 싶은 사실만을 편파적으로 끼워맞췄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믿지 않지만, 선동하는 유튜버들은 굳게 믿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2021년에 일어난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이다. 당시 수사기관의 발표와 전문가들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끝없이 실종자의 친구를 살인범으로 몰아갔다. 대중은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친구가 살인범이라는 주장에 끼워 맞출 근거를 찾는 것에 더 열중했다. 결국 친구는 법원에서 최종 무혐의 판결을 받는 것으로 의심에서 벗어났지만,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정의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선동하면, 생각보다 쉽게 마녀사냥은 시작된다. 그들이 원하는 ‘진실’만이 인정받고, 거짓 증거는 팩트 체크보다 우선시된다. ‘크라임 씬’은 이러한 세태를 꼬집은 웰메이드 다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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