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스스로 써 내려가는 것, 영화 ‘마놀로와 마법의 책’ [리뷰]

영화 ‘마놀로와 마법의 책’ 리뷰 ‘죽은 자들의 날’ 소재 운명, 스스로 써내려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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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품 포스터

멕시코의 명절 ‘죽은 자들의 날’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문화는 아니다. 디즈니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코코(Coco)’를 통해 처음으로 이 명절에 대해 알게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 또한 영화 ‘코코’와 비슷하게 멕시코 명절 ‘죽은 자들의 날’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죽은 자들의 날(Dia de los Muertos)은 해마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멕시코 전역의 공원과 건물, 가정에 제단을 차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를 기리는 명절이다. 아즈텍인들이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죽음의 여신 믹테카시우아(Mictecacihuatl)에게 바치던 제의에서 유래한 것으로, 3천 년 전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아즈텍 원주민들은 삶이 꿈에 지나지 않으며 죽음을 통해 진정으로 깨어난다고 믿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저서 ‘고독의 미로(El laberinto de la soledad)에서 “뉴욕, 파리, 런던 사람들에게 죽음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금기어다. 하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다르다”며 “그들은 죽음에 늘 관심을 갖고 자주 말하며, 죽음과 함께 잠들고 죽음을 축하한다. 그들에게 죽음은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고 영원한 사람”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오늘 소개할 애니메이션 ‘마놀로와 마법의 책’은 죽음을 향한 멕시코인들의 유쾌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코코’(2017)는 개봉 전 화려한 사후세계의 원색적 색감과 ‘죽은 자들의 날’을 소재로 다뤘다는 유사성으로 ‘마놀로와 마법의 책’(2014)의 표절작이 아니냐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스토리상 유사점은 적은 덕분에 표절 논란은 가라앉았으며, 코코와 유사한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마놀로와 마법의 책’을 찾아봤다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이어졌다.

사진=작품 스틸컷

마놀로와 마법의 책은 2014년 미국에서 제작된 모험 코미디 로맨스 장르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선 오브 재규어’, ‘마야와 3인의 용사’ 등을 제작한 조지 R. 구티에레즈 감독의 영화다.

조 샐다나, 채닝 테이텀, 디에고 루나, 론 펄만,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 대니 트레조, 케이트 델 카스틸로, 아이스 큐브, 치치 마린, 안나 드 라 레구에라, 애니타 브리엠, 그레이 그리핀, 헥터 엘리존도, 가브리엘 이글레시아스, 에우헤니오 데르베스, 조지 R. 구티에레즈,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성우로 참여했다.

영화 평점 사이트 왓챠피디아에서 5점 만점에 3.5점(평가자 2,021명)을 기록했으며 IMDB 별점 7.2점(평가자 7만462명), 로튼토마토 83%를 달성했다. 러닝타임은 95분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마놀로와 마법의 책’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 액자 형식으로 진행된다. 다섯 명의 말썽꾸러기들이 박물관에 도착하고, 한 안내원이 아이들을 일반 전시실이 아닌 특별한 장소로 안내한다. 그리고 비밀의 장소에서 생명의 책(The Book of life) 속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안내원이 목각 인형극을 통해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의 본 내용에 속하는 마리아, 호아킨, 마놀로 등 등장인물은 목각인형 형태로 모델링 되어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감성을 전한다.

책 속의 이야기는 두 신의 내기에서 시작된다. 이승에 자신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남아 있는 영혼들이 매일 축제를 벌이는 ‘기억의 땅’을 지배하는 신 ‘라 무에르테(케이트 델 카스틸로)’와 모두의 기억 속에 잊힌 영혼들의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망각의 땅’을 다스리는 ‘시발바(론 팔머)’는 ‘기억의 땅’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내기를 벌인다.

내기 거리를 찾아 주변을 살피던 두 신은 세 명의 아이를 발견한다. 죽은 자들의 날, 무덤 주변에서 함께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한 라 무에르테와 시발바는 두 소년 호아킨과 마놀로가 동시에 소녀 마리아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신은 호아킨과 마놀로 중 어떤 아이가 마리아와 결혼하게 될지를 놓고 내기를 시작한다.

사진=작품 스틸컷

라 무에르테는 음악을 사랑하는 다정한 소년 마놀로에게, 시발바는 용감하고 자신만만한 소년 호아킨에게 자신의 운을 맡긴다. 그들은 각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변신해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라 무에르테는 마놀로에게 “언제나 순수하고 용기 넘치는 마음을 가지거라”라는 축복을 내린다. 시발바는 호아킨에게 소유자가 절대 상처를 입지 않는 마법의 메달을 주고 사라진다.

그러던 중 마리아의 아버지가 말괄량이 딸의 교육을 위해 마리아를 유럽으로 보내 버리고, 세 아이는 눈물로 이별한다. 시간이 흘러 무적의 호아킨은 위대한 영웅이 되었고, 마놀로는 가업을 이어 투우사가 된다. 그러나 동물을 사랑하는 마놀로는 관습과 달리 투우를 죽이지 않고, 주변의 비난을 받는다.

마을에 돌아온 마리아는 무신경하고 독선적인 호아킨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배려심 있는 마놀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이 순간 내기에서 질까 두려움을 느낀 시발바가 끼어들어 마놀로를 살해한다. 저승에 떨어진 마놀로는 라 무에르테와 시발바의 내기를 알게 되고, 마을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까지 듣게 된다. 마놀로는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난관을 거친다.

영화 ‘마놀로와 마법의 책’은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에 걸맞게 동화적인 클리셰를 따른다. 주인공들은 쉽게 짐작 가능한 해피엔딩을 맞는다. 원제는 생명의 책(The Book of life)이지만, 배급사가 번역한 제목으로 두 신의 내기에 대한 결과도 처음부터 알 수 있다. 물론 승자는 ‘마놀로’다.

그러나 마놀로가 맞서 싸우는 궁극적 대상이 악역인 시발바나 라이벌 호아킨이 아니라 그 자신의 운명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마놀로가 두번째 기회를 얻는 것은 그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주체적으로 결정하면 살아온 덕분이다.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소신 있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덕이다.

사진=작품 스틸컷

영화는 사후 세계에 인간의 운명이 적힌 ‘생명의 책’이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존재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각자 써 내려가는 것이지 정해진 게 아니라는 것이 ‘마놀로와 마법의 책’이 하고 있는 이야기의 본질이다. 영화는 투우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뮤지션의 길을 택한 마놀로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길을 걸어가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단순한 교훈이지만 영화는 화려한 색감의 화면과 독특한 디자인의 캐릭터들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놀로가 부르는 감미로운 사랑 노래 등 귀가 즐거운 OST가 가득하다는 것도 영화의 장점 중 하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가모라 역을 맡았던 조 샐다나, ‘스텝업’, ‘화이트 하우스 다운’, ‘22점프 스트리트’ 등에서 활약한 배우 채닝 테이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더티 댄싱 – 하바나 나이트’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디에고 루나’와 같이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 화려한 성우진 또한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다.

독특한 아트워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면, 혹은 죽은 자들의 날을 다룬 디즈니 픽사의 영화 코코를 즐겁게 봤다면 오늘은 장편 애니메이션 ‘마놀로와 마법의 책’을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디즈니+에서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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