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Meme)의 양면성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리뷰]

왓챠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리뷰 밈(Meme)의 양면성에 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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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왓챠

‘페페.’ 툭 튀어나온 눈을 한 슬픈 얼굴의 개구리, 인터넷에 익숙한 이들은 캐릭터의 얼굴을 보는 즉시 어! 하고 반가움을 표할 것이다. 조금 더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반가움이 아니라 거부감을 드러낼 수도 있겠다.

미국 내에서 슬픈 개구리 페페는 혐오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개구리 페페라는 캐릭터가 처음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구리 페페(Pepe the Frog)의 원작자인 맷 퓨리(Matt Furie)는 2005년 그린 ‘보이즈 클럽(Boy’s Club)’에 엉뚱하고 이상하지만 즐거운 주인공 페페를 등장시켰다. ‘보이즈 클럽’은 맷의 대학생활을 모티브로 한 만화로, 페페는 그 자신을 모티브로 둔 캐릭터다.

문제는 페페가 인터넷 커뮤니티 4Chan에서 인기를 얻으며 시작된다. 4chan은 미국 사춘기 청소년이 주 사용층인 익명 커뮤니티로, ‘니트(NEET)족’의 주 서식지다. ‘NEET’는 ‘학생도 직장인도 훈련생도 아니다(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라는 뜻으로, 한국의 커뮤니티로 예시를 들자면 ‘디시인사이드’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이트다.

사진=작품 스틸컷

처음은 ‘feels good man’이라는 대사를 치는 장면으로 인기를 끌었던 페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넘어 연예인 등 대중들에게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주류 사회에 ‘자신들의 페페’를 빼앗긴 4Chan은 분노했다. 그들은 페페를 네오나치즘, 백인우월주의, 반여성주의, 반유대주의 등 혐오 사상과 연결짓기 시작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하는 대중에게서 페페를 탈취하기 위해서다.

이후 대선 기간 트럼프가 자신과 페페를 합성한 그림을 트위터에 스스로 올리는 등 직접 밈(Meme)을 적극 활용해 우파 커뮤니티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밈(Meme)이란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 그리스어로 ‘모방’을 뜻하는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을 합친 말이다. 모방, 복제, 재창조를 거쳐 후대에 전파되는 문화 요소를 뜻하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주로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난 인터넷 유행어 혹은 이미지’를 의미한다.

페페는 결국 반명예훼손연맹(ADL)의 DB에 혐오상징물로 등록되기까지 한다. 작가 맷 퓨리는 “한때 그저 여유로운 개구리일 뿐이었던 페페가 인종차별주의자나 반유대주의자 사이에서 혐오 상징으로 사용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사진=왓챠

그는 ‘#SavePepe’ 해시태그와 함께 새로운 그림을 올리며 ‘페페 살리기 운동’을 펼쳤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2017년에는 페페의 장례식을 다룬 만화를 배포하며 스스로 캐릭터에 대한 사망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이러한 ‘페페 밈’의 흐름을 쫓아가며 개구리 페페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은 대안우파와 페페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원작자 맷 퓨리 사이의 ‘밈 전쟁’을 조명한다.

다큐의 내용에 따르면 원작자 맷 퓨리는 틈틈이 극단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2019년 홍콩에서 페페가 전혀 다른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페페는 홍콩 시위대에서 ‘민주주의’, ‘저항’, ‘희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지만, 서구 언론들의 인터뷰에서 홍콩 시민들이 내놓은 답변은 간단했다. “못생겼으니까”, “그냥 귀여워서”, “슬퍼하는 얼굴이 다양해서”. 따지고 보면 페페가 극우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것도, 민주주의 시위에서 희망이 상징이 된 것도 페페의 본래 의미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깡’이 몇 년만에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밈의 선두에 섰는지, 야인시대의 ‘사딸라’가 MZ세대의 밈이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뽀로로의 캐릭터 루피가 어쩌다 이곳저곳에 합성되며 유행하는 ‘밈’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도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이 페페의 슬픈 얼굴, 총을 든 페페, 도널드 트럼프의 금발 머리를 뒤집어쓴 페페의 얼굴 뿐이니 그 그림을 보는 이들은 그저 웃으면 그만이다. 페페의 근원이나, 원작자가 페페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밈 향유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사진=맷 퓨리 트위터

인터넷 시대의 밈은 짧고 중독적이다. 짧은 문장, 단어 하나만으로도 뜻을 전달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과 동질감을 나눌 수 있는 데다가 즐겁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야호’를 외치며 갸루피스를 날린다. 깊은 의미는 없다, 그건 그저 ‘놀이’니까.

물론 ‘오히려 좋아’나 ‘가보자고’와 같이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밈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일상 대화 중 아무런 경각심 없이 일본 포르노에서 유래된 밈을 사용하거나, 아메리칸 원주민을 학살하던 미국 군인의 제노사이드(인종,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 구성원을 학살, 절멸시키려는 행위)적 발언에서 유래한 “좋은 OO은 죽은 OO뿐”이라는 말이 대수롭지 않게 사용되는 것을 보면 분절된 콘텐츠로서 ‘밈’의 사용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고작 인터넷 유행어를 사용하고자 그 유래를 조사하는 행위는 번거로울 수 있다. 틱톡 등 짧은 콘텐츠를 소화하는데 익숙해진 사회에게 고작 사진 한 장을 위해, 짧은 문장 하나를 위해 길고 긴 유래를 찾아보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일지 모른다.

또 다른 ‘페페’의 장례식을 막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노력을 기울여 분절적 ‘밈’에 조금의 이해를 더하는 것은 어떨까? 창작자 혼자만의 힘으로 온라인의 흐름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나, 대중이 조금 더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아서 존스 감독이 연출했으며 202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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