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실체,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리뷰]

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리뷰 한국을 뒤흔든 N번방 사건을 파헤치다, 끝나지 않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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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

‘N번방’ 사건으로 불리며 2년 전 한국 사회 전체를 뒤집어 놓았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이하 사이버 지옥)로 제작됐다. 범죄 가담 규모만 최소 6만 명, 확인된 피해자 수만 1,154명을 기록하며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충격을 전했던 초유의 집단 성폭력 사건으로 2019년 한겨레가 기성 언론 중 최초로 고발하며 사회에 드러났다.

최초의 고발 기사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으나, 다음해 SBS ‘궁금한 이야기 Y’, JTBC ‘스페셜 탐사 스포트라이트’가 N번방 사건을 추가로 보도하며 언론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힘썼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추적단 불꽃’이다. 당시 기자를 지망하던 대학생 ‘불(필명)’과 ‘단(필명)’은 기사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 불법 촬영 사이트를 검색하면서 N번방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추적단 불꽃이라는 이름으로 자료를 모아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고 언론에 제보하는 등 사건이 사회에 드러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불’과 ‘단’은 당시 신변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활동했으나 ‘불’은 2022년 얼굴과 이름을 공개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박지현 위원장이 ‘불’이다. ‘단’은 저널리스트의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넷플릭스

‘사이버 지옥’ 제작 소식에 일부 누리꾼들은 자극성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가 탄생할까 우려했다. 실제로 이전에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 무법지대>와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등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제작되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기우였다. ‘사이버 지옥’ 최진성 감독은 다큐멘터리가 범죄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윤리적인 제작을 위해 만전을 기했다. 남성 위주의 제작진이 사건을 다룰 경우 의도와 달리 엉뚱하게 표현될 수 있음을 우려해 조감독을 비롯한 스태프의 70%를 여성으로 채웠다. 범죄 상황은 되도록이면 은유적인 표현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으며 음악과 애니메이션 제작도 모두 여성들이 맡았다.

피해자의 사진 사용 또한 최소화했고,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원본이 아닌 새로 연출해 찍은 사진을 블러 처리해 사용했다. 피해자와 직접 인터뷰하는 장면 또한 2차 가해에 대한 우려로 처음부터 배제했다.

사진=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 전에도 당시 한겨레에서 N번방 관련 보도를 진행했던 김완 기자에게 사건을 극영화로 제작하고 싶다는 영화사들의 자문 요청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김 기자는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피해자가 재연 장면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며 극영화 제작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김 기자는 ‘사이버 지옥’ 제작에 응한 이유로 20년 지기 최진성 감독이 작품 제작에 있어 정치적 올바름을 견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글로벌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기자의 기대대로 최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윤리적으로 제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다큐멘터리는 성범죄 사건에 대한 자극적 고발보다는 새로운 디지털 범죄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경각심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N번방 사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박사’ 조주빈과 ‘갓갓’ 문형욱은 검거되어 각각 징역 42년과 34년형을 받았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적으로 N번방 모방 범죄가 발생하고 있으며’, ‘N번방 영상은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플랫폼과 다크웹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 이러한 ‘사이버 지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영상 속 조은호 변호사는 인터뷰 중 “‘나는 클릭만 했어’, ’나는 채팅만 했어’, ‘나는 그냥 보기만 했는데.’ 실제로 이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범죄 자체가 정말 한두 사람의 행위만으로 그렇게 행위가 커지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행위들이 모이고 모여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만들어내는 범죄거든요.” 조 변호사의 말을 통해 우리는 아직 얼굴도 모르고, 체포되지 않은 6만명의 범죄자를 떠올리게 된다.

N번방 사건에 사회적 관심이 쏠린 덕분에 주범인 조주빈과 문형욱은 디지털 성범죄자 중 중형에 속하는 기간의 양형을 받게 되었으나, 함께 범죄를 저지른 성착취물 구매자들은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에 따르면 N번방 사건 당시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물을 구매하고 소지한 340명 중 단 한 사람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판사들이 밝힌 선처 이유로는 ‘초범이거나 동종전과가 없다’가 31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반성하고 있다’가 293건에 달했다.

최 감독은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다큐멘터리의 제목에 ‘지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로 “한번 퍼지면 삭제가 불가능”한 범죄의 특이성으로 인해 “피해자의 고통이 영구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범죄자는 반드시 잡힌다”는 것. 저널리스트와 경찰들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범죄자는 반드시 잡힌다’라면, 사회가 이어받아야 할 역할은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받는다’일 것이다.

사진=넷플릭스

클릭도, 채팅도, 단순히 보는 것조차 모든 범죄 행위는 처벌받는다는 강한 메시지만이 ‘사이버 지옥’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1997년의 ‘빨간마후라’ 영상부터 2000년대 ‘X양 비디오’, 2015년의 ‘소라넷’과 손정우의 ‘웰컴 투 비디오’, 정준영의 ‘단톡방’과 2018년 양진호의 ‘웹하드 카르텔’까지, ‘N번방’사건의 전조는 이렇게나 많고도 길었다. 사회는 범죄자들에게 ‘반드시 잡히고, 강하게 처벌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실패했다.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사회 전체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이버 지옥’는 해당 사건의 자극성과 범죄자 개인의 악마화에 집중하기보다 사건을 밝히는데 힘쓴 이들을 조명하고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데 힘을 더할 수 있는 고발작이다.

N번방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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