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름답다… 기생수 해석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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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가 끝난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인기가 식고 있지 않는 명작 중 명작 ‘기생수’.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기생수’를 선택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만화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는 만화일까. 기생수라는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해석해보려 한다.

줄거리

줄거리는 기생수 리뷰편에서도 설명했지만 해석편을 바로 보는 구독자를 위해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기생수’라는 애니메이션 자체는 SF 호러이다. 어느 날 인간의 뇌를 뺏어 인간을 포식하는 기생수가 나타난다. 기생수는 서서히 인간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결국에는 기생수와 인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던 중 오른쪽 팔만 기생수에게 기생된 말하자면 기생수와 인간의 중립적인 존재인 주인공 신이치(와 그의 오른쪽 팔 기생수 ‘미기’)가 여러가지 고난을 뛰어 넘고 기생수와 맞서 싸운다.

기생수의 메시지

일단 결론부터 말하도록 하겠다. 기생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독자에게 있어 ‘인간사회의 비판’ ‘생명관의 새로운 시점’ ‘주인공의 성장’ 등 여러가지 감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기생수가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인간은 아름답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생수의 구조

기생수는 마지막 권 부록에서 작가가 “(예정했던 권수를 훨씬 웃돌았을 뿐만 아니라)스토리 내용에도 처음 예정에서 변경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것과 더불어 만화전체의 메시지도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 변화를 분석해보면 ‘자연 찬가(인간비판)→생명 찬가→인간 찬가’ 이런 흐름이라 생각한다.

자연 찬가(인간비판)

윌리엄 작가의 ‘포식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동물학자인 한스 크루크의  “애초부터 우리는 이상으로 여기는 생태계의 과학이 아니라 미의식에 의거하여 정한다”라는 대사가 인용되었다. 그리고 기생수는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지구상의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면 숲이 타 들어가는 일 없이 살 수 있을까… 지구상의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의 수가 100분의1로 줄면 배출하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만 한다고…”

위와 같이 기생수의 초반부터는 자연 찬가와 통렬한 인간비판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인간을 차례 차례 포식하는 기생수의 편이 아닌가 하는 장면도 많다. 그 이외에도 예를 들면 미기의 대사가 인상에 남은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이치… ‘악마’라는 것을 책으로 조사했는데… 제일 그것에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다양한 종류의 생물을 죽이고 먹지만 우리 동료들이 먹는 것은 불과 1~2종류야… 소박하지” 그리고 기생수 타무라 레이코의 발언도 주목할 수 있다. “내가 인간의 뇌를 뺏었을 때 하나의 명령이 내려져 왔다… 이 ‘종’을 먹어 치우라고!

출처 = 판도라TV

이와 같이 작가는 적지 않게 자연 찬가와 인간비판을 테마로 해서 기생수를 처음에 그려 나갔지만, 도중에 작품 전체의 메시지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 이유를 작가는 부록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화의 초반 부분에서는 인류의 문명에 대한 경종이라는 분위기로 깔끔하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 이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말하기 시작하면 묘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여러 사람이 같은 것을 작품 내에서 복창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1화의 초반의 말은 인간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히로카와 시장에게 맡겼다”

처음은 나레이션이나 기생수가 인간을 비판하고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인간인 히로카와 시장에게 인간비판, 자연 찬가를 외치게 한 것이다. 이 부분의 꼬인 구조도 작가의 교묘한 기술이라 볼 수 있다. “인간 1종의 번영보다도 생물 전체를 생각해라! 그렇게 해야 비로소 만물의 영장이 이루어진다! 정의를 위해라고 지껄이는 인간 니놈들! 이 이상의 정의가 어디 있다는 것이냐! 인간이야 말로 지구를 갉아먹는 기생충! 아니… 기생수다!”

출처 = Netflix

타이틀의 비밀을 밝히는 방법도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작품 전체의 메시지가 인간비판으로부터 벗어났다고는 하나, 마지막 보스인 기생수 고토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이 쓰레기 소각으로 인해 생기는 산업 폐기물인 점은 작자도 환경문제 등에 결코 관심을 없앤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 찬가

“모르겠다… 하지만 같이 사는 것은 가능하다!(아시타카, 원령공주)”

기생수는 도중부터 인간비판 보다는 생명의 평등성과 같은 것이 메시지로 부상했다. 그 서술자는 주로 미기인 경우가 많았다. “잘 들어! 너에게 살 권리가 있다면 기생생물(우리들)에게도 그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권리’라는 발상 자체가 인간 특유의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서서히 그저 평등하다는 것보다 생명은 서로 협력해서 살아나가야만 한다라는 ‘생명 찬가’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타무라 레이코의 이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이 이거다. 합쳐서 하나. 기생생물과 인간은 하나의 가족이다. 우리는 인간의 ‘아이’인 것이다”

마지막에는 주인공 신이치도 ‘생명 찬가’의 깨달음을 얻어, 단순한 자연 찬가나 인간비판으로부터 기생수는 탈피한다. “저 녀석들은 좁은 의미에서는 ‘적’일지라도 넓은 의미에서는 ‘동료’다. 모두 지구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무언가에 항상 기대고 살아”

출처 = Netflix

이렇게 보면 기생수는 인간과 생명의 공존, 생명의 아름다움을 제창하는 만화라고 이해할 수 있고 그 의미에서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생명 찬가’라는 단계에서 끝내지 않았다. 여기서 한 스텝 더 밟는 것으로 기생수를 명작의 영역에 끌어 올렸다.

인간 찬가

“인간 찬가는 ‘용기’의 찬가! 인간의 아름다움은 용기의 아름다움! 아무리 강해도 이 녀석들 좀비는 ‘용기’를 몰라!(체페리, 죠죠의 기묘한 모험)”

기생수가 ‘생명 찬가’의 이야기라면 인간을 포식하는 기생수를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그래도 입에 발린 말이다. 역시 인간이 정점에 서는 세계가 아니면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무엇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기생수로부터도 제대로 잘 이해하면 ‘인간 찬가’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기생수의 ‘인간 찬가’는 신이치가 힘든 여정을 보낸 끝에 눈물을 흘리면서 기생수 고토에게 마무리 일격을 날리는 장면에서 제일 잘 나와있다. “미안해… 넌 나쁘지 않아… 하지만… 미안해…”

출처 = Netflix

아마 이 장면은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이었다. 많은 사람을 죽인 기생수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주인공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참회한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죽인다. 왜냐하면 신이치에게 있어 존재가치가 인간>기생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장면으로부터는 ‘기생수를 죽이는 것에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역시 인간의 마음은 아름다워’라는 메시지도 보면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장면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작가도 매우 고민했다고 하지만, 그 고민한 결과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또한 마무리를 짓기 전에 고토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릴 때 신이치는 다음과 같이 매우 힘든 갈등을 했다. “이 철봉… 앞 부분은 어떻게 되어 있지. 뾰족할까… 아니… 뾰족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 피는 ‘고토’의 피였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뒤집어쓴 피가 그대로 묻어 있는 것 뿐인가? 혹시 저게 미기가 말했던 프로텍터의 ‘빈틈’인가. 이 봉으로 프로텍터의 ‘빈틈’을 찌른다? 그런게 가능한가? 지금의 ‘고토’는 그 때와 몸의 형태도 꽤 다르다. 같은 장소에서 ‘빈틈’이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단언하지? 그것보다 저게 ‘고토’ 자신의 피였을까… 이 봉도 사용할 수 있잖아. 이게 그냥 봉이라는 보장은 없어. 앞 부분에 큰 부품이라도 붙어 있으면 어떡하지? 다시 빼내는 것도 못하잖아. 그냥 봉이라고 해도 이상하게 구부려 있으면 안되고 너무 길어서도 짧아서도 안돼. 애초부터 ‘고토’의 스피드에 따라갈 수 있는가? 지금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일어나면 금방 눈치챌거야. 놈의 몸에 닿기 전에 내 몸이 2등분 3등분으로 찢어 나간다… 아니 일어나기 전이다. 아니면 다음 순간일지도 몰라. 정말… 거의 가능성이 없잖아!”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기생수 고토에 대해 매우 인간다운 이것인가 저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신이치를 정말 잘 묘사했다. 그리고 “그래도 해야만 해… 확실히 0이다!”라고 하며 결단한다. 그야말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용기의 아름다움’이다. 그 다음에는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생명 중에 유일하게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이다. 이 장면은 진짜 명장면이다.

그 외에도 ‘인간 찬가’의 복선으로써 타무라 레이코가 인간에게 죽임을 당할 때의 대사도 놓칠 수 없는 명대사이다. “이전에 인간 흉내를 내서… 거울 앞에서 큰소리로 웃어 보았어… 꽤나 기분이 좋았어…” 타무라 레이코는 처음에는 인간을 그저 적이라고 밖에 인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서히 인간이라는 생물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기생수에게는 없는 감정, 웃음의 아름다움 등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최종화 부분에서 신이치와 미기에게 이렇게 말을 시키고 작가는 ‘인간 찬가’를 마무리 짓는다. “인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지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모순되어 있어.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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